황혜민(왼쪽)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지난 26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파드되(2인무)를 추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황혜민(왼쪽)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지난 26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파드되(2인무)를 추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발레 ‘그램 머피의 지젤’ 연습이 한창이던 지난 26일 오후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 18명의 윌리(남자에게 배신당해 죽은 처녀귀신)가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공 지젤(황혜민 분)의 영혼을 감싸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미르타(윌리의 여왕이자 복수의 화신)가 연인 알브레히트 백작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은 시골처녀 지젤의 영혼을 깨워 자신들의 무리로 불러들이는 장면이다.

윌리들은 무덤가를 찾은 마을 사람들을 사납게 노려보며 달려든다. 윌리의 군무는 순백색 튀튀(발레 의상)를 입고 추는 우아하고 서정적인 ‘백색 발레’의 절정을 보여주는 원작과 달리 강렬하고 공격적이다. 호주 안무가 그램 머피는 “원작을 보면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복수의 감정을 품은 처녀귀신들이 왜 이렇게 온화하게 그려지는지 늘 의아했다”며 “윌리들을 악령으로 제대로 표현해 악한 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내달 13~1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발레의 고전 ‘지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호주를 대표하는 안무가인 머피가 안무는 물론 음악과 의상까지 싹 바꿔 유니버설발레단과 함께 세계 초연한다.

영화 ‘마오의 라스트 댄서’의 안무로 잘 알려진 그는 31년간 호주 시드니 댄스 컴퍼니 예술감독을 지냈다. 고전을 현대적인 의미를 담아 재기발랄하게 탈바꿈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 발표한 ‘백조의 호수’에서 영국 찰스 왕세자와 그의 숨겨진 연인 카밀라,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삼각관계를 입힌 재해석으로 세계 무용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머피는 “1841년 초연 이후 174년 동안 가장 변화가 없었던 작품이 바로 ‘지젤’”이라며 “원작의 지젤이 서정적이고 순박하다면 이 작품의 지젤은 좀 더 강렬하고 의지가 강한 여성으로 표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줄거리의 큰 흐름은 원작과 비슷하다. 지젤은 사랑하는 알브레히트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죽는다. 처녀귀신 윌리가 돼 복수하려고 하지만 결국 알브레히트를 용서한다. 머피는 여기에 지젤 부모와 미르타 사이의 악연을 프리퀄(원작보다 시간이 앞선 이야기) 형식으로 붙여 미르타가 복수의 화신이 된 이유를 설명한다.

지젤이 사는 마을 사람들과 알브레히트 가문 사람들의 첫 대면 장면. 머피는 무용수들에게 “좀 더 긴장감 있게…음악에 몸을 맡기세요”라고 소리쳤다. 타악기 소리에 맞춰 남성 무용수들의 힘차고 역동적인 군무가 펼쳐졌다.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다. 현대적 음악에 맞춘 힘 있는 군무가 늘어났다. 50~60명으로 구성되는 오케스트라 인원을 80~90명으로 늘려 소리가 풍성해지고, 꽹과리 등 국악기를 사용해 한국적인 색채를 더했다.

2막에선 지젤과 윌리들이 은빛 가발과 핏기없는 모습으로 등장해 원작보다 훨씬 영적인 느낌을 준다. 지젤의 영혼이 무덤에서 떠오르는 모습은 국내 발레 무대에선 보기 드문 ‘와이어 액션’으로 구현한다. 관에 누워 있던 지젤이 와이어를 타고 둥실 떠오른다.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는 “2막 윌리의 군무는 유령들의 모습을 기발하게 표현해 내 환상의 세계처럼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2003년부터 지젤 역으로 50차례 이상 무대에 올랐던 그에게 ‘새로운 지젤’은 어떻게 다가올까. “음악부터 안무까지 모든 게 달라져 완전히 딴 작품 같아요. 이전 ‘지젤’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쉽지만은 않아요. 연약하지만은 않은, 활발하고 강인한 지젤의 모습이 무대에서 어떻게 보일지 저도 기대됩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