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어릴 때부터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재산을 물려주는 ‘계획증여’가 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늘어나는 '절세증여'] 어릴 때부터 단계적으로…'계획증여' 4년 새 24% ↑
증여받은 사람의 연령을 보면 10세 미만이 2009년 1571명에서 2013년 1955명으로 384명(24.4%) 늘었다. 10세 이상 20세 미만도 같은 기간 3271명에서 3906명으로 증가했다. 한 번의 상속으로 끝내려는 경우보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단계적으로 꾸준히 증여하는 자산가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상속·증여세가 누진세율 구조이기 때문에 재산이 많은 경우 한 번에 넘기려면 출혈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세청이 차명계좌 재산을 명의자 소유로 추정하기로 한 데 이어 차명거래를 원천 금지하자 어린 자녀에게 금융자산을 증여하는 부자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차명계좌가 적발되면 벌금이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어서다.

황재규 신한은행 세무사는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고객이 지난해 고등학생 아들 명의로 된 예금 1억원을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묻길래 정식으로 증여할 것을 권했다”고 말했다. 아들 이름으로 만든 차명계좌에 넣어둔 돈으로, 세무서에 신고하고 정식으로 명의를 넘긴 것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금액이 종전 4000만원 이상에서 지난해 2000만원 이상으로 강화된 것도 금융자산 증여가 늘어난 배경이다. 금융자산을 다른 가족에게 이전해 세금 부담을 피하거나 줄이려는 것이다. 이자나 배당 등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에 더해져 최고 38%의 세율로 과세된다.

세금 없이 증여할 수 있는 증여공제 한도가 늘어난 것도 금융자산 증여가 늘어난 배경으로 꼽힌다. 성인(만 19세 이상) 자녀에 대해서는 10년 합산 증여공제 한도가 종전 3000만원에서 지난해 5000만원으로 늘어났다. 10년마다 5000만원씩은 증여세를 내지 않고 증여할 수 있는 것이다. 김근호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장은 “미리 계획을 세워 자녀가 어릴 때부터 증여하면 절세 효과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현금, 예금, 유가증권 등 금융자산과 증권자산의 연간 증여 규모가 2013년 처음으로 토지나 건물 등 부동산자산 증여 규모를 넘어섰다. 국세청에 따르면 유가증권과 금융자산 증여금액은 2013년 7조2339억원으로 토지, 건물 부동산자산 증여금액(6조5721억원)을 앞질렀다. 박정국 외환은행 세무사는 “유가증권은 최근 몇 년간 증시가 침체된 상황에서 향후 상승 가능성을 보고 쌀 때 물려주자는 생각으로 증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일규/박한신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