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여전히 깊게 박힌 '대못 규제' 뽑아내야
최근 블룸버그가 ‘2014년 세계 시가총액 500대 기업’을 발표했다.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3개사에 불과했는데 중국은 46개사, 일본은 32개사였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기업들이 2013년 22개사에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점은 그렇다고 해도 ‘잃어버린 20년’의 일본도 30개사에서 32개사로 늘어났다. 한국만 6개사에서 반토막이 났다.

순위에 든 한국 대표 기업들도 갈 길이 멀어보인다. 미국 애플의 시가총액은 7356억달러(약 804조원)에 달한다. 한국 정부의 올해 예산(376조원)의 두 배가 넘는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215조원, 현대자동차는 37조원, SK하이닉스는 28조원 정도로, 삼성전자는 애플의 4분의 1 수준이고, 현대자동차나 SK하이닉스는 20분의 1이 채 안 될 만큼 초라하다. 한국 기업들은 전년도에 비해 순위도 떨어졌다. 기업의 크기가 곧 경쟁력은 아니겠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밀리고 있다는 방증일까 두렵다.

이처럼 한국의 글로벌 대기업이 적고 뒤처지는 이유는 한국에 있는 독특한 대기업 규제 탓이 커 보인다. 한국은 자산규모 기준으로 일정 수준 이상인 대기업에 차별적인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신규순환출자 금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규제, 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 용어조차 어려운 규제가 너무 많다. 이렇게 크다는 이유만으로 구박을 당하다 보니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하면서 기업들이 성장을 기피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종업원 300명 미만 중소기업이 1000명 이상의 대기업으로 성장한 경우는 제조업이 0.0007%, 서비스업이 0.0009%에 불과했다. 사실상 거의 없는 셈이다.

편중된 대기업 업종도 문제다. 삼성전자 등 500위 안에 든 한국 기업 모두 제조업 기반 회사다. 서비스업 기업은 단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일본만 해도 미쓰비시도쿄파이낸셜그룹이 91위, 닛폰텔레그래프가 120위, NTT도코모가 123위에 오르는 등 대형 서비스업 기업이 눈에 띈다. 중국 핀테크(금융+기술)산업의 신성으로 불리는 텐센트는 또 어떤가. 이 기업은 인터넷 게임에 주력하는 회사로 최근에는 바이두, 알리바바와 함께 중국 핀테크산업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서비스업 기업이다. 삼성전자가 28위인데, 설립된 지 15년에 불과한 텐센트가 30위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등 서비스산업 육성에 방점을 둔 경제활성화 법안은 2년 넘게 동면에 빠져 있다.

청년층 ‘고용절벽’에 대한 우려가 크다. 통계청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19~24세 청년이 선호하는 직장은 국가기관 27.4%, 대기업 19.8%, 공기업 18.4%, 중소기업 3.5%, 벤처기업 2.5% 순이다. 청년들은 공무원 아니면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공기업 일자리는 늘리기 어렵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30대 그룹의 신규채용 계획은 12만1000명 선이다. 반면 최근 3년간 평균 51만5000명의 대졸자가 취업시장에 나오는 데다 취업 재수, 삼수생이 누적되고 있으니 대기업 취업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지금보다 대기업이 더 많아져 청년층이 원하는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크면 다친다’는 식의 대기업 규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의료, 관광, 교육, 소프트웨어 등 서비스업 분야의 글로벌 대기업들로 클 수 있도록 서비스업 규제개혁도 시급하다. 우리 청년들이 세계 500대 기업 명함과 ‘빨강내복’을 부모님께 드리는 모습을 그려본다.

배상근 <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