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텅 빈 미국장관 강연장
지난달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밀컨 콘퍼런스에서 겪은 일이다. 페니 프리츠커 상무부 장관이 미국의 통상정책을 주제로 한 시간 동안 강연을 하는 회의장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500명이 넘게 들어가는 대형 컨벤션홀의 앞 두 자리 정도만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았을 뿐이었다. 오전에 실리콘밸리의 창업기업(스타트업)이 미래 신기술을 발표한 세션에는 빈 좌석을 찾기는커녕 발 디딜 틈이 없어 서서 강연을 들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장관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 맨 앞줄부터 협회장이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자리를 나란히 채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주최 측 관계자를 만나 “장관을 불러놓고 주최 측조차 참석을 안 해도 되느냐”고 질문하자 “행사에 온 참석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 아니냐”며 거꾸로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순간 ‘내가 아직도 정부 중심의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과 한국의 경쟁력 차이는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 대한 시각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콘퍼런스 내내 정부의 정책방향을 설명하는 세션보다는 첨단 기술을 주제로 한 발표나 강연에 사람들이 대거 몰렸다.

저소득층에 대한 무상급식과 교육 등 공공서비스를 ‘일정 수익률을 조건으로 한 금융상품’을 통해 제공하는 ‘임팩트 인베스트먼트’세션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 발표자는 “정부는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재정도 부족하다”며 “우리는 정부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것 못지않게 시장원리를 통해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문제를 푸는 것이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인 간(P2P) 온라인 대출과 관련한 세션에서는 “우리가 은행보다 수익률이 높은 것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보험료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예금자 보호를 명목으로 수수료를 거둘 게 아니라 투자자들이 스스로 위험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소비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규제가 실제로는 리스크(위험)를 줄이기 위한 시장 메커니즘의 작동을 방해한다”며 “정부가 리스크를 키운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