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명은 격물치지에서 시작된다
기존 알파벳 문자 기반의 키보드에 한글을 효율적으로 입력할 수 있도록 만든 공병우 박사의 삼벌식 한글 타자기, 발효 음식에 최적화된 김치 냉장고….

한국 고유의 문화와 결합해 일상 속에 깊이 자리잡은 뛰어난 발명품들이다. 일명 때수건이라 불리는 ‘이태리타월’도 비스코스 레이온이라는 거친 질감의 이탈리아 원단과 우리의 목욕 문화를 접목한 발명 사례다. 이처럼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삶을 좀 더 편리하게 진화시키고, 나아가 일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발명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런 발명을 수없이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측우기다.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는 세종의 아들 문종이 백성들의 농사에 중요한 강우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고, 이를 바탕으로 장영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발명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자세에서 시작된다. 격물치지는 사물의 본질이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면 지식에 이른다는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잘 살펴보고 끝없는 탐구의 자세로 창의와 아이디어를 접목하면 무엇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발명’과 일맥상통한다.

최근에도 격물치지 끝에 나온 발명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면발의 굵기, 맛, 색깔, 식감 등을 다양화한 신제품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즉석 라면이 좋은 사례 가운데 하나다.

즉석 라면은 세계의 음식 문화를 바꾼 20세기의 대표적인 발명품으로 꼽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무렵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출발한 즉석 라면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전쟁 통이었던 까닭에 공습으로 공장을 잃기도 했다. 그렇게 수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즉석 라면이 탄생했다. 라면의 진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리가 더욱 간단한 컵라면으로 발전해 전 세계에 보급됐다. 무중력 상태에서 조리할 수 있는 우주식 라면이 만들어질 만큼 역사적인 식품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세계의 역사를 새로 쓴 우리만의 발명품도 많다. CD플레이어를 추억 속으로 보내고 새 시대를 연 MP3플레이어, 각종 스포츠 경기 응원석을 물들이는 응원용 막대 풍선 등은 한국이 만든 발명품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 한국은 지식재산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위치에 올랐다. 지난해 특허출원 21만여건, 특허등록 약 13만건을 기록하며 세계 4위 ‘특허 강국’이 됐다. 11개월로 단축된 평균 특허심사 처리기간 역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히 빠른 수준이다. 한국의 위상은 지난해 부산에서 열렸던 지식재산권 선진 5개국(IP5) 특허청장 회의에서도 입증됐다. 의장국으로서 행사를 주도하며 특허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 같은 결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발명을 장려하고 발명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는 19일은 50번째를 맞는 발명의 날이다. 온 국민이 발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격물치지 정신을 견지하기를 소망해본다.

조은영 < 한국발명진흥회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