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가 3일 열린 미국 LPGA투어 노스텍사스슛아웃 3라운드 두 번째 홀에서 티샷을 한 뒤 공의 궤적을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박인비가 3일 열린 미국 LPGA투어 노스텍사스슛아웃 3라운드 두 번째 홀에서 티샷을 한 뒤 공의 궤적을 살펴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침묵의 암살자’ 박인비(27·KB금융그룹). 좀체 웃거나 화내지 않는 그가 요즘 짜증내는 일이 슬금슬금 늘어났다. 퍼팅 때문이다. 15m가 넘는 장거리도 쏙쏙 집어넣던 그의 ‘컴퓨터 퍼팅’이 얼마 전부터 살짝살짝 홀컵을 스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그는 퍼터를 시계추처럼 크게 휘두르거나 미간을 찡그렸다. 전에는 보기 힘들던 이런 반응은 지난달 20일 미국 LPGA투어 롯데챔피언십 마지막날 이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많다. 후배 김세영(22·미래에셋)의 기적 같은 이글샷 한 방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그 시점이다. 다 잡았던 우승컵을 헌납했던 그는 한동안 자신이 점령했던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천재 소녀’ 리디아 고(18·뉴질랜드)에게 내준 뒤 되찾지 못하고 있다. 리디아 고는 시즌 2승을 먼저 챙기며 박인비와의 세계랭킹 점수 차도 1.77점으로 벌렸다. 그에게 시즌 2승이란 ‘힐링’이 필요한 이유다.

◆천재·베테랑들 맹추격

일단 명예 회복 가능성은 높아졌다. 미국 LPGA투어 노스텍사스슛아웃(총상금 130만달러)이 호기다. 그는 3일(한국시간) 열린 3라운드까지 9언더파를 쳐 렉시 톰슨(20·미국)과 공동 1위를 달렸다. 신예 톰슨이 18번홀(파5)에서 행운의 버디를 잡지만 않았어도 단독 선두는 박인비의 몫이었다.

샷감이 좋았다. 페어웨이 적중률 84.6%, 그린 적중률 83.3% 등 최상의 컨디션을 보였다. 드라이버샷도 이번 대회 세 번의 라운드 중 가장 먼 255야드 안팎을 넘나들었다. 퍼팅 수가 32개(1라운드 27개, 2라운드 26개)로 많지만 않았어도 톰슨과의 격차를 4~5타 차로 벌릴 수 있었다. 톰슨은 그러나 우드로 친 두 번째 샷이 관중석에 정통으로 맞은 뒤 오른쪽 그린 위로 튕겨 올라간 덕에 손쉽게 버디를 낚아 선두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박인비는 “다들 실력이 워낙 좋기 때문에 누구라도 우승 후보”라며 “3타 정도 더 줄여 우승컵을 들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의 2승 길은 첩첩산중이다. 최종 라운드에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4타 차 이내에 톰슨 외에도 9명이 포진해 있다. 겁없는 천재 브룩 헨더슨(17·캐나다)이 1타 차로 바짝 추격 중이고, 후배 김효주(20·롯데마트)도 5언더파 공동 8위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대상은 ‘베테랑’ 언니들. 백전노장 캐리 웹(41·호주)과 앤절라 스탠퍼드(38·미국)가 8언더파 공동 3위에 올랐고 크리스티 커(38)는 7언더파 공동 6위, 줄리 잉크스터(55·미국)는 5언더파 공동 8위다.

◆리디아 고 극적 회생

커트 탈락 위기에 몰렸던 리디아 고는 극적으로 회생했다. 대회 둘째날 중간합계 1오버파를 쳐 공동 62위로 70명이 진출하는 3라운드에 오른 데 이어 셋째날에는 1타를 줄여 이븐파로 41위를 기록했다. 마지막 라운드 출전은 50명에게만 허용된다.

리디아 고는 “샷을 하는 내내 네팔만 생각했다”며 “운이 따라줘 4라운드까지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네팔 지진 구호 성금 기부도 가능해졌다. 리디아 고는 앞서 이번 대회 상금 전액을 네팔 지진피해 복구 성금으로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1라운드 14번홀에서 친 세 번째 샷이 소나무 가지에 걸리면서 잇따라 6타를 잃고 커트 탈락 위기에 몰렸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