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법의 날(4월25일) 기념사를 통해 이런 현실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양 대법원장은 “법이 불합리하게 제정되고 자의적으로 적용·집행된다면 권력의 지배일 뿐 법의 지배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장 깊이 새겨들어야 할 곳은 당연히 국회다. 경제민주화란 광풍 아래 졸속으로 만들어낸 각종 포퓰리즘 입법, 이익단체에 놀아나는 청부 입법, 행정권을 남용하게 하는 규제 입법, 무슨 일이든 법으로 묶고 보자는 날림 입법이 갈수록 늘어난다. 저질 법들의 홍수다. 국회 발의 법안은 19대에서만 1만4000건을 넘었다. 법을 단지 많이만 만들면 일 잘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입법만능주의를 넘어 입법권의 타락이다. 입법 남용은 청문회와 예산심의권 등을 통해 사법부와 행정부까지 장악해가고 있다.
이렇게 남발된 법이 무슨 정당성과 권위를 가질 수 있겠는가. 법을 우습게 아는 풍조가 확대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운 나쁘면 걸리는 법, 걸면 걸리는 법이라는 인식이 더 퍼진다면 준법도, 법치도 헛된 구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이 “법률가가 외면하는 법을 신뢰하고 따르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한 게 법조계의 자성만도 아니었다. 뇌물, 탈세, 병역비리, 정치자금법 위반자 등 온갖 범법자들이 국회에서 요직을 잡고 입법부를 타락시켜왔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떼법은 더 효과적이라는 의식을 차단해야 법치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다. 22선의 팔순 현역의원도 불법 도로점거 농성엔 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미국 경찰을 배워야 한다. 법원도 준법에 한층 엄격해야 하고, 법조계 전체가 헌법 수호와 법치주의 확립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하지만 국회가 변하지 않는 한 법치도 준법도 요원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