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4월22일 오전 8시18분

2011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던 쌍용자동차를 사겠다는 국내 후보가 떠오르지 않자 삼성증권은 문득 ‘해외에서 원매자를 찾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매각 주관사가 아니었지만 2008년 업무제휴를 맺은 영국계 투자은행(IB) 로스차일드를 통하면 인수후보를 물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예상대로 로스차일드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해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을 데려왔고, 삼성증권은 마힌드라의 인수 자문을 맡아 거래를 성사시켰다.
삼성증권-로스차일드 컨소시엄은 2013년 비스테온 글로벌 공조사업부문의 한라공조(현 한라비스테온공조) 매각도 성사시켰다. 한라공조를 일약 세계 2위 공조업체로 도약시킨 거래였다. 삼성증권의 성공 사례에 자극받은 NH투자증권도 2011년 미국계 IB인 에버코어와 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들 사례는 글로벌 네트워크 부족이라는 국내 IB들의 최대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략으로 꼽힌다. 업무제휴란 국내에 법인이나 지점이 없는 외국계 IB와 거래정보를 교환하고 공동으로 자문하는 협약을 말한다. 국내 증권사가 외국계 IB의 한국 지점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 외국계 IB는 국내 증권사의 해외 지점이 되는 방식이다. 한 증권사의 IB 대표는 “업무제휴를 보다 구속력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 공동자문 사례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방 사수’는 국내 IB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 과제다. 지난해 삼성그룹이 화학·방산 계열사 4곳을 한화그룹에 판 거래에서 국내 IB업계는 사모펀드(PEF)를 배제한 기업 간 직거래라는 점에 주목했다. 지금까지는 대기업 계열사를 사들인 PEF가 이 회사를 다른 대기업에 되파는 식으로 PEF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형 PEF들은 대부분 외국계 IB 출신이어서 자문사는 철저히 외국계 IB들의 몫이었다.

국내 증권사 IB 대표는 “사업이 고도화될수록 PEF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계열사를 사고파는 거래가 늘어날 것”이라며 “국내 기업 간 직거래 시장만큼은 반드시 국내 IB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네트워크와 IB 노하우를 단숨에 확보할 수 있는 글로벌 IB 인수는 국내 IB의 생존 전략으로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하지만 글로벌 IB 인수도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의 대형 IB들이 파산 위기에 처하자 일본 최대 은행그룹인 미쓰비시UFJ는 세계 2위 증권사인 모건스탠리 지분 25%를 90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조직에 일본 문화를 이식하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쓰비시UFJ모건스탠리와 모건스탠리미쓰비시UFJ란 합작법인 두 개를 따로 세워 모건스탠리의 고유 문화를 존중해줬다. 같은 합작법인 안에서도 미쓰비시UFJ 출신 직원은 일본식, 모건스탠리 출신은 미국식으로 성과보상 체계를 달리 적용했다. 그 결과 한때 인수합병(M&A) 리그 테이블 순위가 8위까지 밀렸던 미쓰비시UFJ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