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기피하던 업체들
면세점서 토종에 밀리자
中 선호 디자인으로 교체
◆해외 화장품들의 ‘레드 마케팅’
9일 면세점 업계에 따르면 에스티로더는 제품·포장 용기가 붉은색인 ‘뉴트리셔스 로지프리즘 래디언트 에센셜 세트(130달러·약 14만원)’를 주력 제품으로 밀고 있다. 지난해 8월 3종으로 출시한 뉴트리셔스 로지프리즘 제품군 중 젤에멀전(50mL)과 에센스(30mL)만 따로 추린 면세점 전용 제품이다. 에스티로더는 그동안 갈색을 제외하면 파스텔 색상 위주로 제품·포장 용기를 만들어왔다.
크리스찬디올은 신제품을 제치고 1998년 처음 출시한 ‘이쁘노틱 쁘와종(100mL·125달러·약 13만6200원)’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빨간 과일 열매처럼 생긴 용기에 담긴 향수다. 워낙 오래된 제품이라 롯데백화점 본점 매장에는 진열하지 않았지만 롯데면세점 본점에서는 요우커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가장 바깥쪽 진열대에 뒀다.
클라란스도 하얀색 뚜껑을 제외하면 용기 전체가 붉은색인 전신 탄력관리용 크림 ‘바디리프트 셀룰라이트 컨트롤(200mL·58달러·약 6만3200원)’을 주력 상품으로 밀고 있다. 로레알파리도 면세점 매장의 진열대 절반을 붉은색 계열인 ‘리바이탈리프트’ 제품군으로 채웠다. 대표 제품은 ‘리바이탈리프트 매직 블러 데이 크림(50mL·21달러·약 2만3000원)’이다.
◆국내 화장품과 면세점 승부 나서
해외 유명 화장품들은 그동안 제품·포장 용기에 흰색·연분홍색·옥색 등 은은한 색상을 주로 쓰고 강렬한 원색은 자제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화장품 브랜드들은 전통적으로 투명한 용기를 선호해왔다”며 “색상을 넣어야 하는 경우에도 분홍색이나 옅은 녹색 반투명 용기를 사용해 내용물의 순수함을 부각시켰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명품 화장품들의 변신은 7조5000억원대인 국내 면세점 시장의 ‘큰손’인 요우커를 의식한 행보다. 국내 최대 면세점인 롯데면세점의 지난해 매출 중 요우커 비중이 70%에 달할 만큼 중국 관광객이 매출을 좌우하고 있어 이들이 선호하는 붉은색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백화점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면세점에서도 토종 브랜드에 밀리자 피, 죽음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서구권에서는 꺼리는 붉은색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토종 화장품에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는 초조함도 레드 마케팅의 배경으로 꼽힌다. 신라면세점의 경우 매출 상위 10위권을 토종 화장품이 휩쓸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화장품 매출 ‘빅5’도 후·설화수·라네즈·헤라·잇츠스킨 등 모두 토종이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