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국립극장) 공연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시대를 넘어 통용될 수 있는 기획력으로 한국 공연문화를 이끌어 오고 있는 안 호상 국립중앙극장과 마당놀이 공연으로 두터운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배우 김 성녀 씨가 국립창극단 예술 감독을 맡으면서 현대판 창극을 쏟아내고 있다. 국립창극단은 1962년에 창단했다. 고전 텍스트를 창극화 시켜오던 소리하고는 사뭇 다르다. 소리가 달라지니 관객이 모인다.
현대판 창극을 표방한 고선웅 작, 연출‘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5. 5.1~5.23.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재공연) 로 걸쭉하게 한판 놀더니 웃음, 감동을 섞어 우리 것에 세련미를 보여줬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산적인 연극 만들기를 하고 있는 제일교포 연극연출가 정의신은 브레히트 원작 ‘코카서스의 백묵원’(국립극장.15. 03.21~03.28)을 연출 특유의 연극문법으로 극의 뼈대를 재구성해 올리고, 판소리로 맛을 비비고 창극을 섞었다. 우리전통 창극문화에 실험적인 입체감을 시도했다.
마치, 이야기는 독일 브랜드로 옷을 입히고 전통문화인 판소리와 가락으로 섬세한 모양으로 맛을 내면서 재일교포 출신 연극연출가가 디자인 한 것 같다. 완성된 옷에 ‘현대판 창극’으로 상표를 붙였다. 이 묘한 융합효과로 실용적인 옷이 만들어졌다. 한국, 일본, 독일의 정서적인 문화가 섞여졌는데 김치 맛도 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맛도 난다. 기분이 묘하다.
일본 효고 현 히메지 시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힘 있는 연극을 내놓고 있는 정의신 연출은 한국연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강(고수부지)에 대형 천막텐트를 쳐 놓고 공연한 <인어전설.1993>은 극장을 이동식 텐트로 무대화 했다. 자연환경을 극에 개입 시키므로써 연극적 경계를 허물고, 허구성과 실재성들을 융합해 그로테스크한 연극성들을 가미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로도< 야끼니꾸 드래곤>, <노래하는 샤일록>등 정의신 연출다운 화제작을 내놓고 있다.
○ 원작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창극'으로 거리조절하기
정의신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는 브레히트 작품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집어 들었다. 브레히트(1898~1956)의 서사극적 요소가 특유한 연극적 문법과 색으로 칠해진다. 극을 바라보고 감정이 움직여지면 관객의 내면은 작품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 들게 마련이다. 작품에 빠져들수록 받아들이는 감정의 강도는 다르다. 감정을 깊게 적시라고 신호하는 연속극이나 감정에 능동적으로 빠져 들 수 있는 연극을 선호하는 관객이라면 브레히트 작품은 낯설게 느껴진다.
관객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브레히트 작품을 바라보고 마주한다. 감정 몰입의 틈새를 안준다. 브레히트는 자본주의, 이념과 갈등, 국가와 민중, 전쟁과 빈곤, 물질과 타락, 권력과 인간, 폭력과 억압 등이 작품에 스며들고, 연극적으로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현실 대립되는 모순적인 이야기를 접함으로써 관객들은 감정의 의존성 보다는 비판적 이성과 사고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객관화 시킨다. 브레히트 작품은 이러한 객관적 시선들과 융합되어 극적 장치들을 열어놓고, 관객을 작품으로 깊숙하게 끌어들임으로써 연극적 참여를 통한 공감과 ‘거리조절 하기’를 시도하면서 냉혹한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브레히트의 원작 ‘코카서서의 백묵원’은 전쟁으로 인한 토지 소유권의 논쟁, 총독부인의 아들(미휄)과 하녀 ‘그루셰’의 삶과 갈등, 재판관 ‘아츠닥’ 이야기와 백묵으로 그려진 원 안에 둘러싸여있는 ‘친권 논쟁’이 이야기 기본구조다. 구성의 골격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 전쟁의 대립과 민중의 허무성 ’ 이다. 브레히트가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역사화는 상징적 국가를 세우고 전쟁과 대립의 갈등을 통해 억압과 고통에 휘둘리는 사회적 모순들로 채워진다.
브레히트는 관객에게 “내가 만들어 놓은 연극 세계가 현실화가 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고 비판할 것인가? 지금, 말하는 것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라고 묻는 식이다. 재판관 아츠닥이 제안해 백묵으로 그려진 원 에서 하녀 그루셰와 총독부인(나텔라 아바슈빌리)과의 친권논쟁의 마지막은 아이(미헬)를 사이에 두고 서로 팔을 잡아당긴다. 친모를 가리는 ‘친권자게임’은 한 국가를 두고 이념과 갈등이 폭력적 전쟁으로 번져 국가 소유권을 둘러싸고 대립적 전쟁을 이루는 현실의 그림자를 비춘다. 재판관 아츠닥은 버려진 아이를 전쟁 속에서 키워낸 그루셰를 친모라고 판결함으로써 브레히트의 시선은 민중의 삶으로 깊숙하게 파고든다.
○ 브레히트로 노래하고, 창극으로 우리정서 심기를 시도한다.
3월21일~28일까지 국립극장해오름 극장에서 공연된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일본의 대표적인 연극연출가이자 우리 연극관객들에게도 친숙한 제일교포 출신의 정의신 연출과의 융합이 묘미다. 정의신 연출은 브레히트의 ‘코카서스 백묵원’을 이야기의 뼈대만을 남겨두고 그만의 방식으로 재구성시킨다.
일단, 해체시키고 창극으로 재구성한 원작을 그만의 방식대로 요리한다. 정의신 특유의 연극적 냄새를 가미하기 위해 발라낸 중요한 이야기의 살점들은 그대로 붙이고 유지하면서도 구성과 재료들은 정의신 연극문법 방식대로 배치한다. 때로는 인물이 과장되고, 정제된 그로데스크함을 드러낸다. 연극적인 외형성에 그만의 웃음코드를 넣고 인물의 내면성에는 소리의 정서로, 장면과 인물의 특수성은 희화적으로 그려내면서 장면에 균형성 배치한다.
판소리 대화체를 감정표현에 근간으로 하는 창극에 브레히트의 서사극적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장면배치를 극중극 놀이들로 무장한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요소를 유지하면서 인물과 극의 외형에는 우리 마당문화를 접목시키고, 감정언어는 현대적으로 창극화 시킨다. 인물 내면의 감정들은 판소리 특유의 탁음상태의 감정이 판소리로 발화 된다. 발화되는 판소리의 감정들은 타악의 박자와 서양악기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로 섞여져 현대적 멜로디로 융합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감정의 정서는 판소리로 뱉어 내면서 민중의 고단한 삶의 내면성들은 파편화 되지 않고, 판소리로 침전되어 관객 가슴을 파고든다. 절묘한 조화고 만남이다.
정의신 연출은 이러한 실험적인 만남을 조합하고 연극적으로 조립하기 위해 관객과의 거리 좁히기를 한다. 국립 해오름 극장의 프로시니엄 무대 공간인 박스형 구조를 헐어버리고 무대에 객석을 설치한다. 공간을 허물고 무대로 객석을 전면 배치하면서 브레히트 연극의 특징을 살리고, 우리 마당놀이 문화를 공간에 세운다. 일정한 배우들의 등, 퇴장의 공간성도 무대와 객석의 전 방향으로 확대되면서 감상에 치우칠 수 있는 극적 몰입을 경계하고 참여무대로 확장한다.
거리감을 좁힌 무대공간은 다양한 놀이적 무대로 전환된다. 장면은 평화의 마을에서 전쟁의 파편들로 갈라지고, 전쟁의 무질서한 대립과 민중의 고단한 삶의 공간으로 바뀌어 진다. 전쟁으로 튀어나온 현상은 갈라지고 찢어진 인간 내면의 속살들을 파고든다.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서술자이자 재판관인 아츠닥은 등장부터 극이 끝날 때 까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극을 바라보고 개입한다. 제 3자의 시선이고, 극을 마주하는 관객시선이다. 극을 지탱하는 것은 브레히트 적이다. 극중 장면들에서는 감정에 몰입보다는 무대에서 펼쳐져 있는 현상에 대해 재판관이 되어 줄 것을 주문하는 식이다.
브레히트의 작가적 시선은 세계 1,2차 대전을 휘몰아친 전쟁기억에 멈춘다. 멈춘 기억의 파편들은 전쟁으로 쪼개진 ‘허무성’이다. 그 갈라진 역사의 기억들을 서사극으로 파편화 시키고, 생소한 역사의 현재성으로 들어난다. 전쟁으로 스며든 이념의 대립, 민중의 절망, 계급주의, 권력과 착취, 자본주의, 부로주아계급, 노동과 토지, 민중의 자유와 억압 등 브레히트는 냉정한 시선으로 무대와 마주하고 그 시선은 게스투(Gestus)연결망으로 이루어진다. 작품을 통해 현실과 좁혀내며 동시대적 사회적 상징의미들을 발견하게 된다. ‘코카서의 백묵원’은 전쟁의 틈새 속에서 갈라진 이념의 대립, 분단, 황폐화된 사회와 쪼개진 국가, 민중의 사회적 역할, 국가와 권력의 의미성을 차근차근 들추어낸다. 이 들추어짐의 사이로 관객은 극과 마주하게 된다.
○김건표 교수(대경대학 연극영화과 학과장)는 연극과 공연예술분야 평론 및 인터뷰 전문가다. 연극·뮤지컬·공연 예술문화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방송과 다양한 매체의 신문을 통해 공연예술가들의 인터뷰와 작품리뷰를 써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