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미국 등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P5+1)이 핵 협상을 타결하면서 중동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벌이는 중동 패권 경쟁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예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사우디와 이란은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예멘 내전과 4년 넘게 지속된 시리아 내전, 이라크 분쟁 등을 둘러싸고 적대적 감정이 커지고 있다. 사우디는 이슬람 다수파인 수니파의 종주국이며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다. 핵 협상 타결에 따라 이란이 국제사회에서 입지를 강화하면 두 나라는 힘의 균형을 새롭게 맞춰야 한다. 중동 내 사우디와 이란을 중심으로 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이란 입지 강화로 새로운 힘의 균형 필요

핵 협상 타결에 따라 이란은 예멘과 시리아를 돕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이집트와 이라크·시리아 등 전통적 중동 강호들이 정치적 혼란과 내전 등으로 세력이 약해져 이란에 더욱 힘이 쏠릴 수 있다”며 “경제 제재가 해제돼 이란의 숨통이 트이면 이슬람 시아파 대표주자로서 예멘과 시리아의 시아파에 대한 지원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우디와 마찰이 불가피해지는 수순이다. 이란은 시아파로 구성된 예멘의 후티 반군을 지원하며 사우디와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 시리아 내전에서 수니파 반정부 세력과 싸우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부를 도와주면서 사우디에 맞서는 모양새다.

사우디도 이란이 예멘과 시리아 등에 지원을 강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겉으로는 핵 협상이 잘 돼 중동과 세계 안보 강화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면서도 속으로는 타결을 마뜩잖아 한 이유다.

이란 움직임 두고 보지 않겠다는 사우디

사우디는 아랍 영토에서 세력을 뻗치고 있는 이란이 과거 페르시아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을 두고만 보지 않겠다는 뜻을 다각적으로 밝혀왔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쿠웨이트, 이집트 등 수니파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해온 이유다. 미국 정부에는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척결 과정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가 이라크에서 너무 많은 지역을 차지하게 두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수니파 대국인 이집트를 앞세워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저지하기 위한 아랍연합군 창설을 지지해왔다. 지난달부터 수니파 걸프국과 함께 예멘에서 후티 시아파 반군에 폭격을 퍼부으며 본격적인 실력 행사에 나서기도 했다. 사우디의 견제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이란이 시아파 지원에 나서면 분쟁 확대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게 국제 외교가의 시각이다.

두바이 소재 싱크탱크인 근동·걸프 군사 분석연구소(INEGMA)는 ‘전면적인 종파 전쟁’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란 핵 협상 타결에 이스라엘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도 중동지역의 주요 변수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줄곧 적대관계를 이어왔다. 3년 전 이란이 선제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며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타결은 핵폭탄 제조가 목적인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국제적인 합법성을 부여하는 방안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이란이 핵을 갖게 되면 이스라엘에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적의 적은 아군’이 되는 국제 정치의 구조상 이스라엘이 실제 행동에 나서면 아랍 정세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