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진국 가계의 금융자산 비중은 40%에서 많게는 70%를 넘는다.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2014년 ‘주요국 가계금융자산 비교’ 자료 기준이다. 반면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 비중은 25% 정도에 불과하다.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한국 40대의 금융자산 비중은 31% 수준이다. 은퇴를 눈앞에 둔 50대는 25.9%, 다수가 은퇴자인 60대 이상은 17.6%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금융자산 비중이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다. 자산이 많은 연령대인 50대의 평균 자산은 4억3000만원인데, 금융자산은 1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금융자산 비중이 이처럼 낮으면 보유자산 규모가 크거나 은퇴 이후 안정적인 소득기반이 없을 경우 유동성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노후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에 처할 확률이 높다. 요즘처럼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금융자산 1억원을 갖고 은퇴한다면, 이자로만 생활하는 건 꿈도 꾸기 어렵다. 매달 100만원씩 쓴다고 가정할 때 10년도 안돼 원금까지 소진돼버린다. 수명이 길어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답이 안 나오는’ 구조다. 어떤 방식으로든 금융자산 비중을 늘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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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연금 우선…투자상품 차선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연금을 중심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은퇴 이후에도 월급처럼 정기적인 소득원이 있어야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3층 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을 활용해 노후생활비를 준비했다면 부담이 덜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금융상품을 활용해 자산을 정기적인 현금흐름으로 유동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40년간 월 100만원씩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연 2.5%의 수익률을 올린다고 가정할 때 약 3억원의 자산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50대 평균 자산을 기준으로 볼 때 실물자산 중 2억원을 금융자산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다음 단계는 금융투자 상품을 활용해 자산의 기대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투자 상품을 통해 연간 수익률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면 자산의 소진 시기를 뒤로 늦출 수 있다. 매년 5%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면 실물자산 1억원만 추가로 금융자산으로 바꾸면 된다. 50대라면 3억원의 금융자산(월 연금 100만원 기준)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 2억원의 금융자산만으로도 40년 동안 월 100만원의 연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원금은 매년 200만원씩 소진될 것이다. 수익률을 더 끌어올려 연 6%를 낼 수 있다면 2억원의 금융자산 원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매달 100만원의 연금을 창출할 수 있다.

한국의 가계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산 구성을 분석해보면 국내 가계의 금융자산에서 현금·예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45.5%나 된다.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투자 상품의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전체 자산 기준으로 환산할 때 금융투자 상품 비중이 6.2%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투자에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일본(9.7%)보다도 낮은 수치다. 최근 들어 현금·예금 비중이 다소 감소하고 보험·연금 비중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금융투자 상품 비중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의 상황은 다르다. 보험·연금 비중이 늘고 있으며 금융투자 상품 비중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영국과 호주는 금융자산 내 보험·연금 비중이 50% 이상으로 높다. 보험·연금 기관의 주식과 펀드 비중(영국 43.9%, 호주 62.8%) 역시 높다.

안정성 고려해 장기 투자해야

한국도 자산 관리와 함께 금융투자 상품 활용 방안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만큼 과거처럼 부동산이나 저축만으로 자산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투자처도 국내에만 한정하지 말고 해외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은퇴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짤 때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먼저 안전성에 대한 고민이다. 실적에 따라 수익률이 변동하는 금융투자 상품의 경우 반드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금융시장 상황을 활용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짧은 시일 내에 빼야 하는 자금이 아니라 먼 미래까지 바라보는 투자법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금방 써야 할 자산까지 금융투자 상품에 넣었다가 시간에 쫓겨 충분한 투자 수익을 거두지 못할 수도 있다.

사적 연금은 60~70대에 집중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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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투자 성향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은퇴자 등 보수적인 접근법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대수익률이 높은 금융투자 상품이라면 자신이 예상한 방향과 다르게 흘러갔을 때 상응하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높은 수익률만 기대하고 마음의 준비도 없이 투자하면 심리적인 불안감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으로 투자하면서 투자심리를 다스릴 수 있도록 마음을 먹어야 한다.

개별적인 종목에 투자하기보다 금융시장의 큰 흐름을 따라가는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간접투자 상품을 활용하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투자할 수 있다.

끝으로 연금별로 수령 시기를 미리 조정해놓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 연금자산이 마련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전략이다.

나이가 들면 활동성이 떨어지고 가구 구성원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필요한 노후생활비도 조금씩 줄일 수 있다. 공적 연금 외에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과 같은 사적 연금의 경우 상대적으로 활동이 왕성한 60~70대에 집중적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연금 설계를 하는 게 좋다.

김진웅 <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 ruby7071@nhw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