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존엄사법
2009년 7월 영국의 저명한 지휘자 에드워드 다운스 부부가 스위스에서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은 영국만의 뉴스가 아니었다. 당시 85세의 다운스는 시력에 이어 청력까지 상실해가는 상태였다. 평생의 지휘자가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무용가 겸 안무가였던 74세 부인은 간암과 췌장암 말기였다. 외신들은 이 부부가 소량의 맑은 액체를 마시고 손을 맞잡은 채 두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54년 부부는 병마와 계속 싸우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으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는 유족의 발표도 있었다.

영국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는 자살과 안락사는 금지돼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도운 가족과 친구에게 영국 법원은 좀처럼 유죄판결을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생명을 절대가치로 보는 종교계와 고통없이 깔끔하게 삶을 정리하고 싶은 일반인들 사이의 괴리는 어디서나 존재한다. 다운스 부부의 선택을 계기로 스위스가 자살까지 여행상품화했다는 또 다른 비판도 있었지만 수천만원의 비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가 생의 마감을 위해 스위스로 갔다. ‘웰 다잉’ 역시 현대인의 소망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도 ‘죽음의 의사’ 논란이 있었다. 잭 케보르키안이란 의사가 중증 환자 130명의 자살을 도왔다가 8년 징역을 살았다. 케보르키안은 완전 말기 환자만 도왔던 게 아니었다. 3~4년 정도는 생활할 수 있는 50대 알츠하이머 환자가 비참해지기 전에 떠나겠다고 하자 약물투입을 해주기도 했다. 팽팽한 찬반양론으로 그는 타임의 커버 인물도 됐다. 당시 표지 제목이 ‘자비를 베푸는 천사인가, 살인자인가?’였다. 이런 일을 계기로 오리건주가 미국 최초로 의사가 도와주는 자살을 인정했다. 이어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도 인정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살인방조로 본다. 안락사는 2001년 네덜란드가 맨 먼저 전면적으로 허용했다.

자살을 도와주는 게 의료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다만 회생 불가능한 중증환자에 대한 치료중단 정도는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수용할 때도 됐다. 인공호흡장치는 한 번 부착하면 함부로 뗄 수가 없다. 극단적 고통 속에 몇 달씩 죽음만 연기시키는 말기환자를 가까이서 지켜보면 고령자에게 인공호흡기는 아예 달지도 말라고 극구 말리게 된다. 논의 18년 만에 연장치료결정법(존엄사법)이 이달 중 국회에 제출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종교계의 가르침은 알고도 남는다. 하지만 생명이 최고가치라는 그 차원에서도 존엄하게 떠날 권리도 있는 건 아닌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