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한경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중장년 취업 아카데미’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유현우(왼쪽부터), 김현희, 이은경, 이상기 씨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한경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중장년 취업 아카데미’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유현우(왼쪽부터), 김현희, 이은경, 이상기 씨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학교 졸업 후 수십년 만에 교육 받으면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중장년 취업 아카데미’를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한 이상기 씨(53)는 “교육 프로그램이 좌절에 빠진 삶을 구하는 계기가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장년 취업 아카데미’는 정년을 맞거나 조기 퇴직으로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들의 재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마련하고 한경아카데미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원자 100여명 중 20명을 선정, ‘창조경제 진로·취업플래너 양성과정’이란 주제로 지난해 12월 말부터 2월까지 200시간에 걸쳐 실시했다.

지난해 7월 26년을 다닌 생명보험 회사에서 명예퇴직한 이씨는 한동안 방황했다. 경영지도사, 유통관리사 등 각종 시험에 도전했지만 연거푸 낙방했다. 조급한 마음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 만나는 것도 꺼렸다. “회사 다닐 때는 일 한다는 것 자체가 갑이었죠. 그런데 퇴직하고 보니 명함도 없고 갈 데도 없더라고요. 집에만 있다 보니 경비 아저씨 얼굴 보기도 민망해졌어요. 산에 가는 것도 하루이틀이죠.” 이씨의 말에 같이 공부한 이은경·유현우·김현희 씨도 공감한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가 희망을 찾은 곳은 ‘중장년 취업 아카데미’였다. 이 과정을 통해 특성화 고교생과 대학생을 코칭하는 교육기업을 창업했다. 대학 시간강사 자리도 얻었다.

이은경 씨(50)는 한때 잘나가던 컴퓨터학원 원장이었다. 사업이 잘 될 때는 200명씩 모아놓고 강의했다. 동영상 강의가 늘고 컴퓨터 교육에 대한 트렌드가 바뀌면서 그의 학원사업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위기감을 느낀 그는 지난해 3월 20년 운영하던 학원사업을 접었다. 실직 기간에 직업상담사 같은 자격증을 땄지만 반기는 곳은 없었다. “혼자서 일자리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어요. 그런데 교육을 받다 보니 사회적 흐름을 알게 되고 정보 교환도 할 수 있어 취업 기회가 늘었어요. 막막했던 안개가 걷힌 거죠.” 이은경 씨는 ‘중장년 취업 아카데미’ 수료 후 카네기직업학교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다양한 경력의 강사를 통해 비학습 역량도 키울 수 있었다”며 “200시간 동안 참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유현우 씨(50)는 졸업 후 금융과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일했다. 금융회사를 거친 그는 10년 동안 게임 개발·유통 회사를 경영했다. 회사를 제법 키웠지만 대기업 납품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 지난해 사업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작은 게임회사에도 몸담아봤지만 젊은 사장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새로운 분야의 일을 찾아보자고 결심했다. 수십장의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올드보이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다소 엉뚱한 진로 취업 컨설팅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중장년 취업 아카데미’ 실습시간에 ‘청년 취업 아카데미’ 연수 대학생을 대상으로 2박3일 상담을 해준 게 계기였다. “금융과 게임 분야 진출을 꿈꾸는 대학생들을 코칭했는데, 멘티들의 눈이 반짝였어요. 이후 개인적으로 문의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저의 평범한 지식과 경험이 젊은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양분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유씨는 3월부터 특성화고와 이공계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로 상담과 강의를 하고 있다.

김현희 씨(53)는 평소 강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생 선교회 스텝으로, 교회 전도사로 일하면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지만 강의할 주제와 무대를 얻지 못해 이번 교육에 참여했다. “다양한 강의 중 코칭 분야가 가장 끌렸어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자극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준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죠. 취약한 컴퓨터 분야 기본기를 쌓고 사람을 대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는 최근 한국일자리진로체험아카데미 공감·동행 강사로 합류했다.

네 사람은 구직자 지원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입을 모아 지적했다. “퇴직자 고용보험에서 학원비 등을 지원해주는데, 주로 보일러나 포클레인 같은 기능직이 대상입니다. 학원비를 200만원까지 지원해주는 내일배움 카드도 기능직 중심이에요. 우리같이 교육, 코칭, 컨설팅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구직자에 대한 지원은 찾기 힘들어요. 경영지도사 과정의 경우 재직자에게는 학원비를 지원하는데, 정작 필요한 실직자는 지원 대상이 아니더라고요.”

이들은 하나같이 퇴직자가 연착륙할 수 있는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장에서 미리 전직교육을 해 퇴직 후 충격을 줄일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빨리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이들은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교육에도 자발적으로 참여, NCS를 활용해 취업과 진로에 대한 책을 공동으로 집필하고 싶다는 의욕도 내비쳤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