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 완화(QE) 프로그램이 시작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다음달부터 국채 매입 등에 나설 계획이지만 물량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투자자들이 우량 등급 채권, 특히 독일 국채(분트) 매각을 꺼리면서 ECB의 QE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ECB는 오는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국채를 포함해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는 QE를 시작한다. 시장에서는 ECB가 매달 470억유로를 국채 매입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CB는 작년 말부터 커버드본드,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을 사들여 왔다.

WSJ는 우량 등급 국채의 경우 물량이 ECB 수요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분트는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ECB는 매달 매입하는 국채 중 4분의 1(약 120억유로)가량을 분트로 채울 계획이다. 올해 독일 정부가 발행할 국채 물량은 1470억유로며,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은 1320억유로다. 따라서 실제 순 신규발행 물량은 150억유로에 불과하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9월까지 ECB가 신규 물량의 26배나 많은 2150억유로 규모의 분트를 사들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국채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독일 국채 가격은 급등(금리는 하락)하고 있다. 독일 재무부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5년 만기 국채를 마이너스 금리에 발행했다. 2020년 4월 만기 예정인 국채 32억8000만유로어치를 연 -0.086%에 발행했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손해볼 수 있지만 독일 국채를 사겠다고 몰려든 투자금이 입찰액의 두 배에 달했다.

현재 1조1000억유로 규모인 분트의 약 90%는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은행 보험사들은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기 위해,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분트를 사들였다.

카그다스 아크수 바클레이즈 금리전략가는 “투자자와 은행이 투자 지침과 규제 등을 이유로 분트를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피터 프랫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기금과 보험사는 국채 매각을 꺼리지만 은행과 유로존 이외 국가의 금융사들은 국채를 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