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6년간 단 3시간 교육…'금융 문맹' 양산 주범, 너로구나
‘채권 투자자는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맞을까요, 아닐까요?’(정답은 ‘아니다’)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가 이달 초 금융투자 체험교육에 참여한 서울지역 고등학생 22명에게 이 질문을 했더니 맞힌 사람이 5명뿐이었다. 주식과 채권의 차이를 아는 학생도 드물었다. 한국 청소년의 금융 기초지식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한국 청소년의 금융교육 시간이 미국 영국 호주 등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문제에 대한 의사 결정이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 내 금융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문맹 ‘쪽박’ 가능성 높아

금융당국 및 교육부에 따르면 국내 중·고교 교과과정 중 경제교육 시간은 총 31시간에 불과하다. 전체 교과의 0.7% 수준이다. 이 중 금융 관련 부문은 모두 합해봐야 2~3시간 정도다. 금융교육의 내용 역시 저축과 투자의 차이점 등 단편적인 지식 전달에 국한됐다. 실생활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는 금융·경제 교육은 고교 필수 과목에선 대부분 제외됐다는 설명이다.

‘금융 문맹자’가 양산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진수 경인교육대 교수는 “대학생이 평균 1000만~2000만원의 빚을 지고 졸업하며, 이들의 대출 연체율도 높은 게 현실”이라며 “금융지식이 적으면 빈곤을 세습할 우려도 있다”고 경고했다. 신용카드 무더기 발급에 따른 신용불량자 양산과 가계부채 심화, 노후 빈곤층 확대 등이 청소년기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금융교육과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이다.

김근수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개인 선택의 결과가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바로 금융”이라며 “성인의 경우 한번 잘못 내린 의사 결정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점에서 청소년들이 금융지식을 체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대 여명이 갑자기 늘면서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노후 준비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장래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이자는 측면에서도 학교 내 금융교육 시행은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선 교육 의무화 추세

청소년 금융교육에 공들여온 선진국은 최근 들어 예산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지식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인식에서다.

영국은 작년 9월 금융을 중·고교(만 11~16세) 필수 과목에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수학 교과의 상당 부분을 개인 예산 짜기, 투자위험 알기, 세금 구조 등 실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금융 관련 내용으로 바꿨다.

2008년 대통령 직속 금융교육자문위원회를 둔 미국은 2013년엔 ‘청소년을 위한 금융역량 강화 자문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했다. 금융지식 차이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주 요인이란 판단에서다. 미국 43개 주가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시켰고, 17개 주에선 의무교육으로 편성했다.

호주는 2008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금융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결정했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금융교육을 활성화하려면 선진국처럼 관련 법을 제정하고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