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해운대 달맞이길
‘해운대는 산이 바다에 든 것이 누에머리 같으며, 동백꽃이 땅에 쌓여 말발굽에 밟히는 것이 3~4치나 된다.’(동국여지승람) ‘대 앞에 기암이 층층지고 곡곡으로 굽었는데 해천만리가 높이 열린 것 같아 흉금을 활짝 열고 만상을 접할 수 있더라.’(조엄의 ‘해사일기’)

부산 해운대(海雲臺)는 이들 기록처럼 원래 동백섬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금은 해안선을 잇는 달맞이길 일대와 언덕을 포함한 해변 전체를 일컫는다. ‘부산의 몽마르트르’로 불리는 달맞이길은 옛적부터 푸른 바다와 붉은 동백, 백사장과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명소다. 달맞이(看月)고개와 청사포(靑沙浦)에서 바라보는 저녁달의 운치가 일품이다.

해운대해수욕장을 지나 송정해수욕장으로 가는 와우산 중턱의 오솔길은 15번 이상 굽어진다 해서 ‘15곡도(曲道)’라고도 한다. 정월 대보름날엔 달빛 젖은 바다의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봄밤을 가로등처럼 밝히는 벚꽃의 화사함도 압권이다. 달과 꽃과 바다에 취한 연인들의 표정은 또 어떻고.

달맞이동산 해월정(海月亭)의 비석에는 춘원 이광수 시 ‘해운대에서’가 적혀 있다. ‘누우면 산월(山月)이요 앉으면 해월(海月)이라/ 가만히 눈 감으면 흉중에도 명월(明月) 있다/ 오륙도 스쳐가는 배도 명월 싣고 가더라.’ 오륙도의 고깃배들은 조용필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연락선으로 바뀌었다.

옛사람들은 석양을 지고 오륙도 쪽에서 돌아오는 어선들을 오륙귀범(五六歸帆)이라 해서 해운팔경의 하나로 꼽았다. 만선의 돛배 위로 갈매기가 날고 황금빛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이다. 누운 소 형상의 달맞이 언덕에서 맞는 해넘이 역시 우산낙조(牛山落照)의 절경 그대로다.

달맞이언덕 일대의 화랑과 카페촌, 추리작가 김성종 씨의 추리문학관도 명소다. 신선한 해산물과 제철 횟감, 오래된 금수복국의 깊은 미감을 즐길 수 있는 맛집순례까지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젊은날 객기에 젖어 달리던 그 길, 소금기 서걱이던 그 모퉁이를 오늘은 어떤 연인들이 손잡고 돌고 있을까.

이 아름다운 길의 산책로가 이제야 모두 연결됐다고 한다. 몇 년 전 완공한 다른 구간과 달리 보도가 없는 84m짜리 다리(해송교)가 문제였는데 그 옆에 보행자 전용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전망대도 설치해 송정해수욕장 일대를 여유롭게 굽어볼 수 있도록 했다니 그 길 따라 다시 한 번 걸어보고 싶다. 내 청춘의 아스라한 풍경 속 옛길이여.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