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는 2인자의 전형을 보여준, 한국 정치사에서는 보기 드문 정객이다. 두 차례 국무총리를 역임했고, 국회의원을 아홉 번 지냈다. 5·16 직후부터 소위 ‘혁명 동지’들로부터 견제를 받았고 1969년 3선개헌 이후에는 박정희로부터도 의심을 받았다. 그는 그 과정에서 2인자의 숙명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투옥됐을 때 그를 찾은 육사 후배 노태우에게 2인자론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1인자에게 절대 밉보이지 말 것, 또 1인자가 서운하게 대하더라도 결코 서운한 표현을 하지 말 것 등이었다. 서운함을 드러낼 경우 주변에서 이간질하는 세력이 나타나 1인자와의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설명이었다. JP 자신이 그렇게 살았다. ‘3김’ 중에는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지 못했지만 최후까지 남아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지막 정객이 됐다.
중국에는 역사적 2인자들이 많다. 멀리 제갈공명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저우언라이 전 총리는 문화혁명의 와중에서도 마오쩌둥이 “10억 인구가 넘는 중국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저우언라이 총리뿐”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중국 지식층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도 바로 저우언라이다. 주룽지 전 총리도 관리형 2인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주룽지는 권좌에서 내려선 이후 언론에 단 한번도 노출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 비하면 한국에는 2인자가 없다. 모두가 영웅만을 원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1인 리더의 옹졸함 때문일까. 그러고 보니 소 꼬리보다 닭 대가리가 낫다는 말도 기억난다. YS도 DJ도 결과적으로 2인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풍파 속에서 오직 JP만이 그 경지에 도달했다. 아무나 가는 경지도 아닌 성싶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