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 부시-클린턴 家 세기의 대결…錢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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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정치권이 가장 주목하고 있고 있는 빅 이벤트는 뭘까. 2016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정치 명문가(家)의 결투를 꼽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클린턴 가문’과 ‘부시 가문’의 맞대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은 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바이든 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등 당내 경쟁자들이 있지만 지명도나 조직·자금력에서 이미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대선 출마 의사를 강력하게 내비친 그는 공화당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최근 들어 사람과 돈까지 부시의 예비 캠프로 대거 몰리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2016년 대선은 클린턴 전 장관과 부시 전 주지사의 한판 승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 명문가의 진검승부, 특히 24년 만에 벌어지는 리턴매치라는 점에서 역대 대선 가운데 최고 흥행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시-클린턴 家 24년만에 리턴매치
부시 가문과 클틴턴 가문의 대권 첫 대결은 1992년이었다. 당시 재선을 노리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시골 변방’인 아칸소 주지사 경력 밖에 없었던 40대 정치 신예 빌 클린턴과 맞붙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신 보수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공화당이 12년째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터였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독일통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의 하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중국의 천안문 사태 등에 직면하면서 국내이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때마침 미 경제도 침체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신예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라는 대선 구호를 들고 나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꺾는 이변을 낳았다. 공화당으로서는 뼈아픈 패배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8년간의 재임기간을 마친 뒤 백악관의 주인은 다시 아들 부시로 바뀌었다. 텍사스 주지사를 거친 아들 부시 후보는 현직 부통령인 앨 고어와 대결했다. 부시는 개표과정에서 법정분쟁까지 가면서 어렵게 승리했다. 이번에 젭 부시가 출마해 대선에 승리하면 미 역사상 처음으로 3부자(父子)가 대통령직에 오르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지금까지 여론조사로 보면, 클린턴 가문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칠 수 있다. 그러나 본선까지는 아직 1년 8개월이 남아 있다. 미국인들이 ’퍼스트 레이디’를 대통령으로 뽑을 지, ‘3부자 대통령’이란 기록을 만들지 장담하기에 너무 이르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가 1월말 미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와 젭 부시의 ‘가상 대결'에서 힐러리가 54%의 지지율을 기록해 41%였던 부시를 앞섰다. 힐러리가 대중적인 지지도에서 부시 보다 한 발 앞서 있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가장 큰 강점 가운데 하나가 대중적 인기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오와 주와 함께 대통령선거의 초기 판세를 보여주는 대선 풍향계인 뉴햄프셔 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뉴햄프셔 주 세인트 안셀름 대학과 블룸버그통신이 공동 실시해 2월 8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는 힐러가 56%의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15%, 조 바이든 부통령 8%로 힐러리와 큰 격차로 벌어졌다. 공화당에서는 젭 부시가 16%로 1위를 차지했지만 랜드 폴 상원의원 13%,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12%,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10% 등과 큰 격차는 나지 않았다. 당내 경선에서 젭 부시가 힐러리에 비해 ‘출혈’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돈 먼저, 정책은 나중에’
힐러리와 젭 부시의 일거수 일투족은 연일 미 언론에 중계방송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 않고 있다. 먼저 선언하는 쪽이 불리해서일까. 문제는 돈 때문이다.
미국 선거법에 따르면 공식 대선 후보는 자금모집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선관위의 감독을 받기 전에, 다시 말해 일반 정치인 신분으로 가급적 많은 자금을 모은 뒤에 정식 출마선언을 하겠다는 게 양측의 전략이다.
젭 부시는 지난주 62회 생일을 맞아 뉴욕을 방문했다. 세계 4대 사모펀드인 KRR의 공동 창업자 헨리 크라비스 회장이 그를 위해 마련한 정치자금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26개의 방이 달린 크라비스 회장의 펜트 하우스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뉴욕의 거부 40명 이상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장권만 최소 10만달러. 젭 부시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선거전략을 이야기하면서 수백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모았다.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최근 기사에서 “자금모집은젭 부시가 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생긴 행사가 아니라 출마준비과정의 핵심”이라며 “그가 출마 선언을 뒤로 미루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선거위원회(FEC) 부위원장 출신인 케네스 그로스는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젭 부시가 대통령 선거의 새로운 본보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돈이 먼저고 정책은 다음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 마찬가지다. 대선출마 공식 발표를 뜸 들이면서 전국 곳곳을 돌며 조직을 확보하고 자금을 모으고 있다. 미 언론들은 힐러리가 올 여름께 공식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리트저널(WSJ)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운영하는 ‘클린턴 재단’이 외국 정부로부터 받은 거액의 기부금이 힐러리의 대선 출마 시 도덕성 시비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재단이 공개한 기부금 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호주 독일 캐나다 정부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물론 이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활용되지는 않지만 클린턴 전 장관의 지명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도덕성 시비’를 불러올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클린턴재단에서 자금모집 관련 최고개발책임자(CDO)로 일했던 데이스 청은 힐러리 예비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4조달러-錢의 전쟁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대결을 벌였을 때 대선 비용은 각각 1조1000억달러와 1조2000억달러였다. 사상 처음으로 대선비용이 2조달러를 돌파하자 당시 언론들은 '금권선거의 극단'을 보여줬다고 비판했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뿌려지는 비용은 어느 정도가 될까.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 지지도 3위를 달리고 있는 조 바이든 부통령은 최근 아이오와주 연설에서 2016년 대선 비용이 4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공화당 후보 1인당 2조달러 이상 쓸 것이란 얘기다. 사상 유례없는 ‘전(錢)의 전쟁’이 예고돼 있다.
미국 대선은 예선전에서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전국 50개주를 돌아가며 치뤄지는 정당별 예비경선(프라이머리·Primary)는 6개월간 진행된다. 중간에 실탄이 떨어지면 그날로 짐을 싸야 한다. ‘머니 프라이머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작년 말부터 공화당의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줄곧 압도적인 1위를 달려온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연초에 갑자기 출마포기를 선언한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문제였다. 여론의 지지율에 고무된 롬니는 실제로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롬니 참모들은 높은 지지율을 내세우며 공화당의 '큰 손' 기부자들에게 예비 모금활동에 나섰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젭 부시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출마를 접었다는 게 정설이다.
힐러리와 젭 부시는 지금까지는 각 당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이지만 지지율에 더해 돈과 조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변’이 생길 수 있다. 조직은 돈에서 나오고, 그 돈이 다시 조직의 힘을 키우기 때문이다. 클린턴재단에서 기부금 모집을 담당했던 데니스 청 클린턴재단 최고개발책임자(CDO)는 최근 힐러리 예비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데니스 청은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일할 때 의전담당 부실장으로 근무한 ‘힐러리 사단’의 핵심 멤버로 꼽힌다. CNN은 “2011년 클린턴재단에 합류한 데니스 청은 지금까지 2억4800만 달러의 기금을 모았다”며 “힐러리 캠프가 공식 발족하면 캠프의 자금총책을 맡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젭 부시는 1월초 정치자금을 모으고 세력을 규합할 정치활동위원회(PAC)인 ‘라이트 투 라이즈(Right to Rise)’를 발족했다. 3월까지 1억 달러 이상을 모금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미국의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힐러리-젭 부시 누가 家門의 덕을 많이 보나
힐러리는 퍼스트 레이디를 거쳐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폭넓은 대중 인지도도 여기서 나온다. 특히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점은 힐러리의 최대 장점이다. 다만 고령이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1947년생인 힐러리가 2016년 대선에 승리해 이듬해 백악관에 입성하면 그 때 70세가 된다.
반면 젭 부시는 1953년생이다. 너무 젊지도 않고 노령도 아니다. 젭 부시는 공화당내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있는데다 개혁적인 성향, 그리고 히스패닉계의 지원이라는 3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다. 그는 부시 가문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와는 큰 인연이 없다. 그는 일찌감치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로 가 그곳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뒤 1998년 플로리다 주지사에 당선된 후 재선까지 이뤄졌다.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 가운데 하나가 부인이다. 부시는 사립명문고인 필립스아케데미(앤도버) 재학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멕시코에 갔다가 가난한 집안의 콜룸바를 만나 21살에 결혼했다. 그가 유창한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고, 가난한 히스패닉 여성과 결혼했다는 점은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앤드류 코헛 전 퓨리서치센터 사장은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힐러리와 젭 부시 가운데 누가 가문의 덕을 더 많이 볼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전 대통령의 인기와 유권자들이 후보와 그 가문을 어떻게 관련 지어 생각하는지 등을 감안하면 힐러리가 젭 부시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기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보다 훨씬 높다는 게 단적인 예다. 2014년 여름 갤럽조사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호감도는 64%였고 부시 대통령은 53%에 머물렀다.
가문의 부정적인 유산에 대해서도 힐러리가 젭 부시에 비해 유리하다. 힐러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가문의 네가티브 유산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성추문, 아칸소 주지사 시절 부동산 투자관련인 ‘화이트워터 사건’ 등 주로 개인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다. 반면 젭 부시는 부시 전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금융위기 등 미국 사회에서 지금도 논란으로 남아 있는 이슈에 직면해 있다. 미 언론들은 젭 부시가 풀어야 할 가장 큰 난제는 ‘부시 피로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은 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바이든 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상원의원 등 당내 경쟁자들이 있지만 지명도나 조직·자금력에서 이미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대선 출마 의사를 강력하게 내비친 그는 공화당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최근 들어 사람과 돈까지 부시의 예비 캠프로 대거 몰리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2016년 대선은 클린턴 전 장관과 부시 전 주지사의 한판 승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 명문가의 진검승부, 특히 24년 만에 벌어지는 리턴매치라는 점에서 역대 대선 가운데 최고 흥행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시-클린턴 家 24년만에 리턴매치
부시 가문과 클틴턴 가문의 대권 첫 대결은 1992년이었다. 당시 재선을 노리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시골 변방’인 아칸소 주지사 경력 밖에 없었던 40대 정치 신예 빌 클린턴과 맞붙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신 보수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공화당이 12년째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터였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독일통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의 하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중국의 천안문 사태 등에 직면하면서 국내이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때마침 미 경제도 침체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신예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라는 대선 구호를 들고 나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꺾는 이변을 낳았다. 공화당으로서는 뼈아픈 패배였다. 클린턴 대통령이 8년간의 재임기간을 마친 뒤 백악관의 주인은 다시 아들 부시로 바뀌었다. 텍사스 주지사를 거친 아들 부시 후보는 현직 부통령인 앨 고어와 대결했다. 부시는 개표과정에서 법정분쟁까지 가면서 어렵게 승리했다. 이번에 젭 부시가 출마해 대선에 승리하면 미 역사상 처음으로 3부자(父子)가 대통령직에 오르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지금까지 여론조사로 보면, 클린턴 가문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점칠 수 있다. 그러나 본선까지는 아직 1년 8개월이 남아 있다. 미국인들이 ’퍼스트 레이디’를 대통령으로 뽑을 지, ‘3부자 대통령’이란 기록을 만들지 장담하기에 너무 이르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가 1월말 미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와 젭 부시의 ‘가상 대결'에서 힐러리가 54%의 지지율을 기록해 41%였던 부시를 앞섰다. 힐러리가 대중적인 지지도에서 부시 보다 한 발 앞서 있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가장 큰 강점 가운데 하나가 대중적 인기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오와 주와 함께 대통령선거의 초기 판세를 보여주는 대선 풍향계인 뉴햄프셔 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뉴햄프셔 주 세인트 안셀름 대학과 블룸버그통신이 공동 실시해 2월 8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는 힐러가 56%의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15%, 조 바이든 부통령 8%로 힐러리와 큰 격차로 벌어졌다. 공화당에서는 젭 부시가 16%로 1위를 차지했지만 랜드 폴 상원의원 13%,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12%,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10% 등과 큰 격차는 나지 않았다. 당내 경선에서 젭 부시가 힐러리에 비해 ‘출혈’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돈 먼저, 정책은 나중에’
힐러리와 젭 부시의 일거수 일투족은 연일 미 언론에 중계방송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 않고 있다. 먼저 선언하는 쪽이 불리해서일까. 문제는 돈 때문이다.
미국 선거법에 따르면 공식 대선 후보는 자금모집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선관위의 감독을 받기 전에, 다시 말해 일반 정치인 신분으로 가급적 많은 자금을 모은 뒤에 정식 출마선언을 하겠다는 게 양측의 전략이다.
젭 부시는 지난주 62회 생일을 맞아 뉴욕을 방문했다. 세계 4대 사모펀드인 KRR의 공동 창업자 헨리 크라비스 회장이 그를 위해 마련한 정치자금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26개의 방이 달린 크라비스 회장의 펜트 하우스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뉴욕의 거부 40명 이상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장권만 최소 10만달러. 젭 부시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선거전략을 이야기하면서 수백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모았다.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최근 기사에서 “자금모집은젭 부시가 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생긴 행사가 아니라 출마준비과정의 핵심”이라며 “그가 출마 선언을 뒤로 미루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선거위원회(FEC) 부위원장 출신인 케네스 그로스는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젭 부시가 대통령 선거의 새로운 본보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돈이 먼저고 정책은 다음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 마찬가지다. 대선출마 공식 발표를 뜸 들이면서 전국 곳곳을 돌며 조직을 확보하고 자금을 모으고 있다. 미 언론들은 힐러리가 올 여름께 공식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리트저널(WSJ)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운영하는 ‘클린턴 재단’이 외국 정부로부터 받은 거액의 기부금이 힐러리의 대선 출마 시 도덕성 시비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재단이 공개한 기부금 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호주 독일 캐나다 정부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물론 이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활용되지는 않지만 클린턴 전 장관의 지명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도덕성 시비’를 불러올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최근 클린턴재단에서 자금모집 관련 최고개발책임자(CDO)로 일했던 데이스 청은 힐러리 예비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4조달러-錢의 전쟁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가 대결을 벌였을 때 대선 비용은 각각 1조1000억달러와 1조2000억달러였다. 사상 처음으로 대선비용이 2조달러를 돌파하자 당시 언론들은 '금권선거의 극단'을 보여줬다고 비판했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뿌려지는 비용은 어느 정도가 될까.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 지지도 3위를 달리고 있는 조 바이든 부통령은 최근 아이오와주 연설에서 2016년 대선 비용이 4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공화당 후보 1인당 2조달러 이상 쓸 것이란 얘기다. 사상 유례없는 ‘전(錢)의 전쟁’이 예고돼 있다.
미국 대선은 예선전에서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전국 50개주를 돌아가며 치뤄지는 정당별 예비경선(프라이머리·Primary)는 6개월간 진행된다. 중간에 실탄이 떨어지면 그날로 짐을 싸야 한다. ‘머니 프라이머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작년 말부터 공화당의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줄곧 압도적인 1위를 달려온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연초에 갑자기 출마포기를 선언한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문제였다. 여론의 지지율에 고무된 롬니는 실제로 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롬니 참모들은 높은 지지율을 내세우며 공화당의 '큰 손' 기부자들에게 예비 모금활동에 나섰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젭 부시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출마를 접었다는 게 정설이다.
힐러리와 젭 부시는 지금까지는 각 당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이지만 지지율에 더해 돈과 조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변’이 생길 수 있다. 조직은 돈에서 나오고, 그 돈이 다시 조직의 힘을 키우기 때문이다. 클린턴재단에서 기부금 모집을 담당했던 데니스 청 클린턴재단 최고개발책임자(CDO)는 최근 힐러리 예비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데니스 청은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일할 때 의전담당 부실장으로 근무한 ‘힐러리 사단’의 핵심 멤버로 꼽힌다. CNN은 “2011년 클린턴재단에 합류한 데니스 청은 지금까지 2억4800만 달러의 기금을 모았다”며 “힐러리 캠프가 공식 발족하면 캠프의 자금총책을 맡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젭 부시는 1월초 정치자금을 모으고 세력을 규합할 정치활동위원회(PAC)인 ‘라이트 투 라이즈(Right to Rise)’를 발족했다. 3월까지 1억 달러 이상을 모금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미국의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
◆힐러리-젭 부시 누가 家門의 덕을 많이 보나
힐러리는 퍼스트 레이디를 거쳐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폭넓은 대중 인지도도 여기서 나온다. 특히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점은 힐러리의 최대 장점이다. 다만 고령이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1947년생인 힐러리가 2016년 대선에 승리해 이듬해 백악관에 입성하면 그 때 70세가 된다.
반면 젭 부시는 1953년생이다. 너무 젊지도 않고 노령도 아니다. 젭 부시는 공화당내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있는데다 개혁적인 성향, 그리고 히스패닉계의 지원이라는 3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다. 그는 부시 가문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와는 큰 인연이 없다. 그는 일찌감치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로 가 그곳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뒤 1998년 플로리다 주지사에 당선된 후 재선까지 이뤄졌다.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 가운데 하나가 부인이다. 부시는 사립명문고인 필립스아케데미(앤도버) 재학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멕시코에 갔다가 가난한 집안의 콜룸바를 만나 21살에 결혼했다. 그가 유창한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고, 가난한 히스패닉 여성과 결혼했다는 점은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앤드류 코헛 전 퓨리서치센터 사장은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힐러리와 젭 부시 가운데 누가 가문의 덕을 더 많이 볼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전 대통령의 인기와 유권자들이 후보와 그 가문을 어떻게 관련 지어 생각하는지 등을 감안하면 힐러리가 젭 부시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기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보다 훨씬 높다는 게 단적인 예다. 2014년 여름 갤럽조사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호감도는 64%였고 부시 대통령은 53%에 머물렀다.
가문의 부정적인 유산에 대해서도 힐러리가 젭 부시에 비해 유리하다. 힐러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가문의 네가티브 유산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성추문, 아칸소 주지사 시절 부동산 투자관련인 ‘화이트워터 사건’ 등 주로 개인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다. 반면 젭 부시는 부시 전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금융위기 등 미국 사회에서 지금도 논란으로 남아 있는 이슈에 직면해 있다. 미 언론들은 젭 부시가 풀어야 할 가장 큰 난제는 ‘부시 피로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