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음식은 나눔이자 만남
설 명절이 다가온다. 필자의 가족도 명절 하루 전날 시댁에 모여 음식을 만들었다. 맛도 맛이지만 명절 음식을 사 먹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추석엔 송편, 구정엔 인절미가 가장 큰 일거리다. 마당 앞 쇠절구에 찐 찹쌀을 넣고 한참을 찧었다. 인절미는 많이 칠수록 차지고 고우며 쫄깃한 맛이 더해진다. 절굿공이 자체의 무게에 더해 떡이 달라붙어 꽤 힘이 들었다. 찬물을 묻혀가며 살살 달래기도 하고 쳐대기도 하다 보면 반죽이 투명해지는 느낌이 난다. 모양을 잡고 썰고 콩고물을 묻혀주면 완성이다. 그쯤이면 며느리들은 ‘떡실신’이다.

음식 만드느라 허리 펼 새 없어도 부엌에서는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아이들은 사촌끼리 제 방에 모여 밤새 재잘거린다. 그렇게 하룻밤을 같은 이불을 덮고 자고 그 다음날 아침 차례를 지냈다. 명절 음식도 음식이지만 딸려온 가족들 하루 세끼 챙기는 게 만만치 않았다. 하루 종일 다듬고, 굽고, 차리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풍족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이니 흥이 나고 즐겁고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한번은 추석 명절 때 어린 아들이 장난치다가 송편을 곱게 빚어 놓은 큰 쟁반 위로 넘어진 적이 있었다. 꼬박 하루 동안 빚어 놓은 송편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동서들한테 무척 미안했는데 지금은 모일 때마다 웃음 꽃 터지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녹두를 갈아 숙주나물을 듬뿍 넣고 부쳐 먹던 빈대떡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도토리묵도 계속 저어가며 은근한 불에 쑤었다. 정성스럽게 만들고 상을 차리면 그 마음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자녀들도 그 정성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음식은 만남이고 나눔이라 했다. 음식을 나누는 만남은 많지만 음식을 만드는 만남은 가족과 친지 같은 혈육관계가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손맛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기 마련이고 맛집도 전문경영인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금은 음식을 각자 해온다. 갈비, 굴비 같은 ‘비’자 돌림은 주로 내가 담당한다. 이런 분담은 효율적이고 편하긴 하다. 하지만 모여서 함께 요리하며 느끼는 즐거움, 행복함은 예전만 못하다.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때의 특별한 정성과 정감은 어떻게든 이어졌으면 좋겠다.

요즘 ‘삼시세끼’란 프로그램이 인기다. 사람들이 음식을 만드는 창조적 즐거움에 눈을 뜨는 것 같다. 명절이라서 음식 만드는 게 스트레스일 이유는 없다. 가족의 배려가 있다면 함께 만드는 즐거움과 같이 나누는 기쁨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권선주 < 기업은행장 sunjoo@ib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