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로 변한 수도권 규제] 서울 면적에 마트·극장도 없는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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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규제에 기업·인구 줄어들고 도로도 끊어진 '주말 유령도시'
낙후지역 전락 '연천의 울분'
대기업·대학 '접근 금지'…1960년대서 시간 멈춰
1950년~1980년대 배경 세트장 없이 드라마 찍어
대기업 진입 '원천금지'…100인이상 업체 1개뿐
낙후지역 전락 '연천의 울분'
대기업·대학 '접근 금지'…1960년대서 시간 멈춰
1950년~1980년대 배경 세트장 없이 드라마 찍어
대기업 진입 '원천금지'…100인이상 업체 1개뿐
“내 집인데도 30년 넘은 화장실 하나 못 고치는데 무슨 수도권입니까.”
지난 6일 경기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의 한 주민은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인근 탄약고 때문에 헛간 하나도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탄약고 반경 660m 이내 지역은 군부대 허락 없이 신·증축할 수 없는 군사 규제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연천군은 수도권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다. 면적의 9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묶여 개발이 막혔다. 면적 676㎢로 서울(605㎢)보다 넓지만 영화관이나 대형마트는 하나도 없다. 영화를 보려면 의정부로, 쇼핑하려면 양주로 나가야 한다. 군내 종업원 100인 이상 사업체는 농협 김치공장이 유일하다.
연천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것은 획일적인 수도권 규제다. 연천은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상 성장관리권역에 속해 대기업의 신·증설이 금지돼 있고 대학도 새로 세울 수 없다. 수년 전부터 군부대가 이전해 비어 있는 땅에 기업을 유치하려 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이유다. 지역 내 놀고 있는 군부대 이전지만 여의도의 8배 규모인 62만여㎡다.
취재진이 둘러보니 그 황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1960년대 영화 배경을 세트장 없이 찍을 수 있는 곳은 연천밖에 없을 것”이라는 군민의 자조는 엄살이 아니었다. 지난해 KBS가 7개월 동안 방영한 드라마 ‘순금의 땅’은 한국의 1950년대부터 1980년대를 세트장 없이 연천에서 촬영했다. 도로 인프라도 최악이다. 서울 노원구 북단에서 연천군청까지 직선거리는 50여㎞. 하지만 차량 이동 시간은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어지간한 길은 연천에만 들어서면 끊어진다.
파주, 연천, 포천 등 경기 북부 도시를 동서로 잇는 37번 국도는 연천 내 10㎞ 구간만 단절돼 있다. 2008년 공사가 시작됐지만 7년 넘게 속도를 못 내고 있다. 공사를 끝내기엔 군 재정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천, 동두천과 서울 상계동을 연결하는 3번 국도 우회로도 11년째 공사 중이다. 김성환 연천군청 규제개혁팀장은 “비수도권에선 균형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낙후된 도시에 도로를 먼저 지어주지만 연천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경제성을 먼저 따지는 바람에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연천군청에서 만난 김규선 군수(사진)도 울분을 쏟아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번 와보시면 알 겁니다. 여기가 무슨 수도권입니까.”
김 군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무려 60여년간 군사 규제를 받고 있는데 수정법까지 적용받아 이중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며 “발목이 하나만 묶여도 뛰기 어려운데 연천군은 양쪽 발목이 모두 묶여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융통성을 기대할 여지가 있는 군사 규제보다 예외 없이 원천적으로 기업의 진입과 활동을 금지하는 수정법이 더 무섭다”며 “전국 수준과 비교해도 인구 밀도가 과하게 낮고 미개발 천지인 지역에까지 개발 규제를 가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 연천에선 기업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1990년대까지 연천과 상황이 비슷했던 파주가 2000년대 들어 탄현면을 중심으로 국가산업단지 지정을 받아 인구 40만명 이상의 공업도시로 바뀐 것과 대조적이다. 종업원 10인 이상 제조업체 수는 71개에 불과하다. 경기도 시·군 평균(733개)의 10%에 그치고 있다.
인구도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1960년대 6만명이 넘었던 연천군 주민 수는 작년 말 기준으로 4만5430명으로 줄었다. 땅끝마을이 있는 전남 해남군(7만7684명), 인근의 강원 철원군(4만7473명)보다도 적다. 전국 시·군·구 평균 인구(22만2000명)의 20%에 불과하다. 30여년 전 한 반에 60명 선을 유지했던 초등학생 수는 10명으로 급감했다. 그나마 있는 젊은이들도 주말이면 쇼핑이나 나들이 등을 위해 인근 도시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화장품 제조업체인 새롬코스메틱의 김경렬 상무는 “공장 부지 가격이 저렴해 지난해 양주에서 연천으로 옮겼지만 젊은 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20대 직원 10여명을 뽑기 위해 만든 기숙사에 40대와 50대 직원 2명만 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군수는 수정법에 가로막혀 대기업의 투자 유치를 놓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2011년 모 식품회사가 이전 의사를 타진해 와 앞으로 20년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물값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을 했지만 결렬됐다는 것. 수도권 투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산업단지 지정을 받는 절차가 워낙 까다롭고 복잡한 데다 지역 인프라가 빈약하다는 이유로 해당 업체는 발길을 돌렸다.
“사실 제 아들이 이곳에서 사업을 한다고 해도 말릴 겁니다. 비수도권으로 가면 각종 세금과 부담금을 면제받으면서 떵떵거리며 사업할 수 있는데 뭣하러 도로조차 변변치 않은 연천에 자리를 잡겠습니까.”
김 군수가 속내와 달리 어깃장을 놓듯이 쏟아낸 푸념에는 “다른 곳은 몰라도 연천만이라도 수도권 규제를 해제해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 5조5430억원 vs 7420억원
2013년 기준 전국 시·군·구(기초자치단체 단위) 평균과 연천군의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를 비교한 수치다. 각종 군사시설 규제에 수도권 규제까지 받고 있는 연천군의 GRDP는 전국 평균의 13%에 그쳤다.
연천=정인설/김은정 기자 surisuri@hankyung.com
지난 6일 경기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의 한 주민은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쉬었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인근 탄약고 때문에 헛간 하나도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탄약고 반경 660m 이내 지역은 군부대 허락 없이 신·증축할 수 없는 군사 규제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연천군은 수도권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다. 면적의 98%가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묶여 개발이 막혔다. 면적 676㎢로 서울(605㎢)보다 넓지만 영화관이나 대형마트는 하나도 없다. 영화를 보려면 의정부로, 쇼핑하려면 양주로 나가야 한다. 군내 종업원 100인 이상 사업체는 농협 김치공장이 유일하다.
연천을 더 힘겹게 만드는 것은 획일적인 수도권 규제다. 연천은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상 성장관리권역에 속해 대기업의 신·증설이 금지돼 있고 대학도 새로 세울 수 없다. 수년 전부터 군부대가 이전해 비어 있는 땅에 기업을 유치하려 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이유다. 지역 내 놀고 있는 군부대 이전지만 여의도의 8배 규모인 62만여㎡다.
취재진이 둘러보니 그 황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1960년대 영화 배경을 세트장 없이 찍을 수 있는 곳은 연천밖에 없을 것”이라는 군민의 자조는 엄살이 아니었다. 지난해 KBS가 7개월 동안 방영한 드라마 ‘순금의 땅’은 한국의 1950년대부터 1980년대를 세트장 없이 연천에서 촬영했다. 도로 인프라도 최악이다. 서울 노원구 북단에서 연천군청까지 직선거리는 50여㎞. 하지만 차량 이동 시간은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어지간한 길은 연천에만 들어서면 끊어진다.
파주, 연천, 포천 등 경기 북부 도시를 동서로 잇는 37번 국도는 연천 내 10㎞ 구간만 단절돼 있다. 2008년 공사가 시작됐지만 7년 넘게 속도를 못 내고 있다. 공사를 끝내기엔 군 재정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천, 동두천과 서울 상계동을 연결하는 3번 국도 우회로도 11년째 공사 중이다. 김성환 연천군청 규제개혁팀장은 “비수도권에선 균형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낙후된 도시에 도로를 먼저 지어주지만 연천은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경제성을 먼저 따지는 바람에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연천군청에서 만난 김규선 군수(사진)도 울분을 쏟아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번 와보시면 알 겁니다. 여기가 무슨 수도권입니까.”
김 군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무려 60여년간 군사 규제를 받고 있는데 수정법까지 적용받아 이중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며 “발목이 하나만 묶여도 뛰기 어려운데 연천군은 양쪽 발목이 모두 묶여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융통성을 기대할 여지가 있는 군사 규제보다 예외 없이 원천적으로 기업의 진입과 활동을 금지하는 수정법이 더 무섭다”며 “전국 수준과 비교해도 인구 밀도가 과하게 낮고 미개발 천지인 지역에까지 개발 규제를 가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 연천에선 기업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1990년대까지 연천과 상황이 비슷했던 파주가 2000년대 들어 탄현면을 중심으로 국가산업단지 지정을 받아 인구 40만명 이상의 공업도시로 바뀐 것과 대조적이다. 종업원 10인 이상 제조업체 수는 71개에 불과하다. 경기도 시·군 평균(733개)의 10%에 그치고 있다.
인구도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1960년대 6만명이 넘었던 연천군 주민 수는 작년 말 기준으로 4만5430명으로 줄었다. 땅끝마을이 있는 전남 해남군(7만7684명), 인근의 강원 철원군(4만7473명)보다도 적다. 전국 시·군·구 평균 인구(22만2000명)의 20%에 불과하다. 30여년 전 한 반에 60명 선을 유지했던 초등학생 수는 10명으로 급감했다. 그나마 있는 젊은이들도 주말이면 쇼핑이나 나들이 등을 위해 인근 도시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화장품 제조업체인 새롬코스메틱의 김경렬 상무는 “공장 부지 가격이 저렴해 지난해 양주에서 연천으로 옮겼지만 젊은 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20대 직원 10여명을 뽑기 위해 만든 기숙사에 40대와 50대 직원 2명만 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군수는 수정법에 가로막혀 대기업의 투자 유치를 놓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2011년 모 식품회사가 이전 의사를 타진해 와 앞으로 20년간 수백억원에 달하는 물값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협상을 했지만 결렬됐다는 것. 수도권 투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산업단지 지정을 받는 절차가 워낙 까다롭고 복잡한 데다 지역 인프라가 빈약하다는 이유로 해당 업체는 발길을 돌렸다.
“사실 제 아들이 이곳에서 사업을 한다고 해도 말릴 겁니다. 비수도권으로 가면 각종 세금과 부담금을 면제받으면서 떵떵거리며 사업할 수 있는데 뭣하러 도로조차 변변치 않은 연천에 자리를 잡겠습니까.”
김 군수가 속내와 달리 어깃장을 놓듯이 쏟아낸 푸념에는 “다른 곳은 몰라도 연천만이라도 수도권 규제를 해제해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 5조5430억원 vs 7420억원
2013년 기준 전국 시·군·구(기초자치단체 단위) 평균과 연천군의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를 비교한 수치다. 각종 군사시설 규제에 수도권 규제까지 받고 있는 연천군의 GRDP는 전국 평균의 13%에 그쳤다.
연천=정인설/김은정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