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이 전자정부 등 공공소프트웨어 국제입찰에서 경쟁력을 잃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내 1호 수출 공무원’으로 불리는 김남석 우즈베키스탄 정보통신위원회 부위원장(사진)은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삼성이나 LG 등 국내 대기업들을 선호한다”며 “하지만 한국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대기업들에 사업 기회를 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관련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대기업 공공입찰 자격 제한’ 규제가 해외 시장에서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행정자치부에서 28년간 일한 전자정부 전문가다. 전자결재와 문서유통 시스템인 온나라시스템을 개발했고 전자정부본부장과 행자부 1차관을 지냈다. 2013년부터 우즈베키스탄 전자정부 구축 사업계획을 중재·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공공시장 참여 기회를 빼앗긴 한국 대기업들은 공공 IT사업 조직을 없애거나 축소하면서 애써 쌓아놓은 전자정부 1위 이미지를 활용할 기회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개정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대기업의 공공소프트웨어 사업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SDS는 공공소프트웨어 관련 조직을 없앴고, LG CNS와 SK C&C 등도 관련 조직을 축소했다. 올해부터는 대기업이 구축한 공공소프트웨어 유지·보수 사업에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낮은 중견·중소기업들은 외국 정부 담당자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냉엄한 현실”이라며 “중견·중소기업들이 외국 정부의 공공소프트웨어 사업에 독자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대기업들의 발이 묶인 상황에서 중국이나 인도 업체들이 신흥국 시스템통합(SI) 사업 대부분을 수주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전자정부를 구축한 경험을 최대한 살려 이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옛 소련 소속이었던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은 서로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어 한 번 진출하면 인접국으로 전자정부 시스템 수출이 가능한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며 “국내 대기업들이 전자정부 시장에서 실적을 쌓으면서 외국 발주처 요구를 맞추고 현지 합작회사 설립을 통해 해외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대해서는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제값을 받도록 해주면 되는 문제”라며 “대기업이 제값을 안 준다고 해서 ‘이 사업 하지 마’라는 식의 조치는 근본적인 치유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 부위원장은 “규제가 풀리더라도 대기업들이 조직을 다시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세계시장 경쟁에서 그만큼 늦어진다”며 “대기업이 중견·중소기업과 동반 진출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전자정부 세계 1위인 한국이 정작 그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신흥국에선 전자정부가 곧 ICT(정보통신기술)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유엔이 2년마다 실시하는 전자정부 평가에서 2010년부터 3회 연속 1위를 차지했다.

■ SW산업진흥법

소프트웨어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대기업 공공입찰 자격 제한’ 규제법


타슈켄트=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