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이 서울대 한국유전체의학연구소에서 한국 바이오산업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이 서울대 한국유전체의학연구소에서 한국 바이오산업 발전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마크로젠 회장·63)은 “급하게 이익을 회수하려는 투자 문화가 바이오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단기간에 실적을 내지 못하면 모든 부담을 창업자가 지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크로젠과 아이센스 아미코젠 등) 이익을 내기 시작한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지금이 한국 바이오산업 기반을 다질 좋은 기회”라며 “실패를 하더라도 기회가 있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또 “바이오산업에서 보다 많은 성공 사례가 나오려면 대기업이 바이오벤처를 인수합병(M&A)해 키울 수 있어야 한다”며 “바이오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내 바이오산업 1세대로 꼽히는 서 회장은 지난달 29일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서울대 의대 교수인 그는 1997년 대학 내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마크로젠을 매출 500억원대의 유전체 분석 서비스 전문기업으로 키워냈다. 마크로젠은 2000년 바이오벤처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시가총액은 3400여억원대다. 한국인 게놈 지도 초안을 완성하는 등 유전체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냈다.

그가 바이오협회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바이오협회가 처음 생긴 2009년 초대 회장을 맡아 연임(2013년까지)했고, 이어 회장을 맡은 배은희 전 리젠바이오텍 대표(18대 국회의원)가 별세한 뒤 다시 맡게 됐다.

그는 “2000년 무렵부터 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와 창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며 “15년간 바이오벤처 기업의 옥석은 가려졌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무허가 의약품을 제조·판매하거나 주가 조작 등을 일삼는 일부 바이오 기업들의 일탈 때문에 바이오산업 전체가 한때 ‘사기꾼 집단’처럼 비쳐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래 성장산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 회장은 “바이오벤처 기업이 일확천금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막연한 핑크빛 기대감이 2000년대 초반에는 팽배했다”며 “그러다 보니 빨리 실적을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감도 컸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는 한국의 바이오산업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산업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라고 강조했다.

그가 설립한 마크로젠도 설립한 지 채 5년도 안됐을 때 투자자들이 지분을 정리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다. 서 회장은 “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는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며 “바이오사업은 10년 이상 연구개발에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을 내비쳤다. 서 회장은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바이오산업을 지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각의 부처가 따로 지원을 하다 보니 통합적인 지원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영국의 바이오청처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담조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 회장은 한국의 바이오산업 비전이 매우 밝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정보기술(IT)이 뛰어나고 의료 시스템도 선진국에 버금간다”며 “중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인 유전 정보를 구축한다면 한국이 차세대 동아시아 바이오 의료 허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