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세계에서 영구운동은 불가능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모터가 발전기를 돌리고 그 발전기가 모터를 돌리면 된다. 그러면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영구운동을 할 수 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믿는다면 영구운동법칙을 믿는 것이다. 증세 없이 추가적 복지가 가능하다면, 복지를 최대한 늘리지 않을 이유는 없으며 복지확대는 공동선(共同善)이다. 하지만 과거 저축을 처분하거나 미래 자원을 빚으로 끌어다 쓰지 않는 한 증세 없는 추가적 복지는 실현 불가능하다.

새해 벽두부터 연말정산으로 나라가 어지럽다. 연말정산은 세금을 확정하는 절차일 뿐이다. 그런 절차가 대란을 초래했다면 우리 사회의 경제 지력(智力)과 소프트웨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감성적 언어가 난무한다. 세금을 올리면 ‘세금폭탄’이고 내리면 ‘부자감세’다. 세금폭탄이 되다보니 세금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부자감세는 일종의 프레임이다. ‘부자를 위한 감세’라는 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감세를 하면 그만큼 가계의 주머니가 두둑해져 지출이 증가하게 된다. 결국 감세는 경제의 선순환을 위한 마중물인 셈이다. 부자감세가 아니라 감세를 통해 부자가 되는 ‘감세부자’가 맞는 말이다. 이 같은 용어 혼란에 ‘서민증세 없는 복지’라는 포퓰리즘이 더해지면 선택지는 단 하나다. 부자증세는 구체적으로 법인세를 올려 복지혜택을 늘리는 것이다. 복지에 관한 한 우리 의식은 중독에 빠져 있다.

연말정산을 복기(復棋)해 보자. 연말정산 대란은 증세에 대한 정부와 납세자의 인식 괴리에서 비롯됐다. 연말정산에 적용된 2013년 소득세법 개정의 핵심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 9000억원의 세수 증가가 예상되지만 정부는 이를 증세로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납세자는 증세를 피부로 느꼈다. 정부의 논리에 따르면 세목 신설과 세율 인상으로 인한 세수 확대만이 증세다. 이 같은 아집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국정기조를 견지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도그마에 빠져 납세자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이는 연봉 5500만원 이하 소득자는 추가 세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발표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전 모의분석에 함몰된 나머지 국민의 다양한 세 부담 증가 사례를 예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자녀소득공제와 출산소득공제 폐지는 당연히 추가 세 부담으로 연결될 터임에도 이를 간과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출산을 장려하면서 다자녀가구 부담을 가중시키는 세법개정은 이율배반적이다. 증세가 아니라면서 올린 담뱃값과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시도는 ‘꼼수 증세’로 인식되면서 납세자의 공분을 자아냈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초유의 ‘연말 재정산 카드’를 던졌다. 세법을 개정해 소급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모조리 원상회복이다. 자녀세액공제는 자녀 1인당 15만원, 3인 이상의 경우 ‘20만원+ α’로 높이고 자녀세액공제로 통합되면서 폐지된 출생·입양공제도 부활된다. 독신 근로자의 세금혜택도 늘어나며 노후 대비용 연금보험료 세액공제율도 높아진다. 하지만 자녀장려세제를 도입하면서 출산공제를 부활시킨 것은 세출은 세출대로 늘리고 공제는 유지하는 것으로 과세원칙과 배치된다. 소급적용은 법의 안정성을 훼손시킨다. 더욱이 불만이 표출된 사례부터 소급해 주면 후일 형평성 시비를 낳을 수 있다. 무분별한 원상회복은 조세저항을 유발하고 세수 부족 사태를 초래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올해 복지지출 예산은 100조원 이상이며 정부예산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30%를 넘는다. 하지만 2012년 이래 세수결손이 심상치 않다. 2014년 국세수입 부족 추계액은 무려 11조1000억원이다. 3%대 경제성장률로는 복지예산을 지탱할 수 없다. 성장 페달을 밟아야 복지를 구현할 수 있고 성장 페달을 밟으려면 복지 팽창을 제어해야 한다. 증세로 복지를 규율할 수 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신화(myth)를 고집하는 한 성장도 복지도 없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