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버지
청와대 폭파 협박 용의자로 지목된 아들을 프랑스에 가서 직접 데리고 온 국회의장 보좌관 출신의 한 아버지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아들아, 사랑한데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이야기했다고 한다. 잘못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당연하게 수반되겠지만 아들을 잘 보살피지 못한 아버지의 애절함이 묻어난다.

만취한 아버지가 자정 넘어 / 휘적휘적 들어서던 소리
마루 바닥에 쿵, 하고 / 고목 쓰러지던 소리
숨을 죽이다 / 한참만에 나가보았다 / 거기 세상을 등지듯 모로 눕힌
아버지의 검은 등짝 / 아버지는 왜 모든 꿈을 꺼버렸을까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 검은 등짝은 말이 없고
삼십년이나 지난 어느날 / 아버지처럼 휘적휘적 귀가한 나 또한
다 큰 자식들에게 / 내 서러운 등짝을 들키고 말았다. (정철훈의 ‘아버지의 등’ 중)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나보다 모든 면에서 약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어떻게 한 존재가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성(城)’에서 ‘왜소함’으로 내려앉았는지. 삶은 그래서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도 모른다고 했나보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그립다. 가난이 몸서리치게 싫었던 어린 시절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돼지 한 마리를 흔쾌히 내주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배웠다. 무엇이 있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소극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나누는 것이 베풂의 시작이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을 받들어 부의금 1억원 남짓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아버지를 기리는 많은 분의 감사의 손길과 어려운 학생을 돕고자 하는 분들의 숭고한 마음이 합쳐져 장학재단이 탄생했다.

오늘도 난 아버지의 사진을 꺼내어 들고 아버지에게 흰 머리가 늘어가는 지금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지 물어본다. 아버지는 그냥 웃어 보이신다. ‘아들아, 사랑한다’라는 눈빛으로.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당장 전화하자. 돌아가신 다음에 묘를 성곽처럼 꾸미고 비싼 나무로 조경을 하면 자식들은 남들에게 칭찬받을지 모르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살아 계실 때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드리는 게 낫다. 한없는 반성을 한다. 뒤늦은 깨달음에 오늘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혼자 걷는다.

이석현 < 국회 부의장 esh33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