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色시카…컬러 입히니 칙칙한 아빠車서 화사한 오빠車로
신사복의 색깔은 십중팔구 검은색과 남색이다. 자동차 색상도 비슷하다. 있어 보이고 싶으면 검은색이고 조금 젊게 보이려면 흰색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둘을 섞은 회색을 선택한다. 이런 흑백논리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나만의 색깔을 찾고 싶다”는 개성파가 늘면서 다양한 색상의 옷으로 갈아입은 차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자동차 색깔론에 대해 알아봤다.

“무채색 거부합니다”

예전엔 자동차 모델별 색상이 10개를 넘지 않았다. 화려한 색깔로 치장해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이젠 옛날얘기다. 화려한 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여러 종류의 색상이 넘쳐나고 있다.

올해 부분변경 모델로 돌아온 현대자동차의 벨로스터는 총 14가지 색상으로 이뤄졌다. 고급 브랜드일수록 색깔 수는 더 많아진다. 포르쉐의 스포츠 세단인 파나메라의 색상은 17개이고,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색상은 19개다. 베스트셀링 모델인 BMW 5시리즈는 무려 24색의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튀는 색깔의 자동차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팔린 벨로스터 중 오렌지색 차량 비중이 24.1%로 가장 높았다. 빨간색이 16.1%로 2위였고, 반짝반짝 빛나는 흰색인 ‘화이트 크리스털’이 13.6%로 뒤를 이었다. 무광 색상을 찾는 소비자도 적지 않았다.

QM3나 티볼리 같은 소형 SUV에선 두 가지 색을 버무린 ‘투 톤 컬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차량 내부까지 겉과 같은 색으로 ‘깔맞춤’하는 게 대세로 자리잡았다.

나만의 색깔을 찾는 현상은 젊은 층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 제네시스도 유채색이 상한가다. 2013년만 해도 파란색 제네시스 판매량은 200여대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엔 1000여대로 5배에 달했다.

이름은 지명 아니면 음식

주류를 차지하는 흑백 색상도 분화하고 있다. 같은 흰색이라도 명도나 채도가 다양해졌다. 현대차의 흰색 종류는 7가지다. 검은색은 12개, 은색은 14개나 된다. 색상이 늘면서 이름 붙이는 것도 어려워졌다. 예전엔 색깔 앞에 ‘라이트(light)’나 ‘퓨어(pure)’ ‘딥(deep)’ ‘울트라(ultra)’ 같은 형용사를 붙이는 게 고작이었지만 요즘엔 다양한 수식어가 들어간다.

대표적인 게 지명이다. 한국GM은 잘 어울리는 도시와 색깔을 짝지었다. ‘맨해튼 실버’나 ‘삿포로 화이트’ ‘프라하 블랙’ 등이 대표적이다. 레인지로버의 ‘칠레’라는 색은 오렌지 계통의 붉은색이다. 칠레와 정열적인 오렌지 색상이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서다. 색깔을 만드는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그 색의 느낌을 특정 도시나 장소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미니의 대표 색상인 ‘정글 그린’의 연원도 정글이다. 음식에서도 영감을 많이 얻는다. 피아트 소형차인 친퀘첸토의 에스프레소는 커피색이고 현대차 벨로스터의 비타민C는 오렌지 빛깔이다.

노창현 현대차 책임연구원은 “디자이너들이 색의 느낌을 어디서 받았느냐를 보여주는 색상 명이 늘고 있다”며 “음식을 먹거나 특정 장소에 가서 그 색깔만의 강렬한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중고차는 여전히 흑백논리

신차 시장에서 대접받던 개성파도 중고차 시장으로 가면 찬밥 대우를 받는다. 중고차에선 역시 무채색이 최고다. 무난해서 누구나 많이 찾기 때문이다. 국산 중형차는 검은색, 수입 중형차는 은색이 평정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28일까지 국내 최대 중고차 거래업체인 SK엔카에서 팔린 YF쏘나타 중고차의 28.2%가 검은색이었다. 같은 기간 판매된 아우디 A6의 27.2%는 은색이었다. 중고 경차와 소형차에선 진주색 계통이 인기가 높고, SUV 시장에선 흰색이 가장 잘나간다.

무채색이 아닌 차량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차량 가격의 3~5%를 덜 받는다. 중고가 5000만원짜리 붉은색 수입 대형차라면 같은 모델의 은색보다 250만원 싸게 팔릴 수 있다는 얘기다.

중고차를 사서 특정 부분이나 전체를 시트지로 감싸는 ‘래핑’ 이용자도 늘고 있다. 중형차 기준으로 전체 래핑작업 비용은 200만원 안팎이며 보닛이나 천장만 하면 20만원 정도 든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