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그리스 나비효과
그리스 좌파연합 시리자의 집권을 바라보는 유럽 각국의 시선이 묘하다. 당장 아일랜드 언론들은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유럽중앙은행(ECB)과 채무 재협상을 한다면 아일랜드도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일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 때 같이 구제금융을 받았다. 국민들의 뼈를 깎는 고통으로 구제금융에서 졸업했지만 아직 ECB 채무는 남아 있다. 더구나 그리스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이었다. 유럽연합(EU)이 그리스에 조금이나마 특혜를 준다면 당장 달려들 태세다.

중국까지 그리스 향배에 관심

올해 선거를 치르는 스페인은 더하다. 스페인의 좌파 포데모스당은 시리자와 연대해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물론 ECB의 채무 삭감이 주된 공약이다. 사정은 포르투갈도 마찬가지다. 핀란드와 네덜란드 등 구제금융에 돈을 댄 나라들은 싸늘한 눈초리로 그리스를 바라본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총리는 디플레이션으로 자국 경제도 힘든 마당에 빚을 받지 못한다면 정치적으로 힘들어진다며 시리자의 부채 탕감 정책은 절대 용납하지 못할 일이라고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좌파정당을 반갑게 맞고 있다. 중국의 국영 해운회사 코스코는 아테네 인근 항만도시의 컨테이너 운항권을 35년간 계약했다. 아테네 국제공항을 20년간 운영하는 대가로 그리스 정부에 5억유로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으로선 그리스가 지중해와 유럽으로 들어가는 전략적 요새다. 이미 시진핑이 2013년 유라시아를 한데 묶는 ‘일대일로’ 전략을 천명했던 터다. 만일 시리자가 유로존을 빠져나온다면 당장 동맹이라도 맺을 기세다.

시리자는 총선과정에서 채무상환에 대한 재협상과 재정긴축 반대 공약을 내걸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부채 탕감을 요구하며 구제금융에 대한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EU에 공공연하게 요구했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고도 수차례 밝혔다.

단일통화체제의 모순 드러나

물론 EU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있다. 어제 브뤼셀에서 열린 EU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지원기간 연장 등 일부는 변경 가능하지만 채무 탕감 등 지원 내용의 대폭적인 변경은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스를 지원하면 다른 나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킨다면 다른 채무국들도 유로존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그리스와 EU의 고도의 협상 게임이 시작됐다. EU 각국도 입장 차이가 있다. 남북한이 치르는 협상게임과는 복잡성이 다르다. EU의 맹주인 독일은 어렵게 만든 유로 단일통화 체제를 절대 깰 수 없다. 그리스의 파장이 나비효과처럼 전 EU를 들끓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그토록 그리스에 집중하는 배경이다.

애초 생산성과 국가경쟁력에서 차이가 나는 나라들끼리 단일통화 체제를 만든 모순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은 오히려 유로 단일통화 체제에 들어가지 않은 결정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마당이다. 영국은 당시 그리스의 파탄이 단일통화 체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지금 시리자의 반발도 일견 타당한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그리스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유로존의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갈수록 커진다. 그리스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