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라면시장은 세월호 사고에 따른 경기침체와 가정간편식(HMR) 매출 증가의 영향으로 5년 만에 감소했다. 한경DB
지난해 국내 라면시장은 세월호 사고에 따른 경기침체와 가정간편식(HMR) 매출 증가의 영향으로 5년 만에 감소했다. 한경DB
지난해 국내 라면시장 규모가 5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세월호 사고 이후 소비심리가 급감한 데 따른 영향이라는 게 라면 업계의 분석이다. 그동안 라면은 경기가 안 좋을수록 판매가 늘어나는 ‘불황형 제품’으로 여겨졌지만, 세월호 충격은 비켜가지 못했다.

牛脂파동도 견딘 라면, 세월호 충격 못 비켜가
농심은 26일 닐슨코리아의 시장조사데이터와 식품유통연감을 기준으로 지난해 라면시장 규모는 1조9700억원으로, 2013년의 2조100억원에 비해 1.9% 줄었다고 밝혔다. 2013년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한 지 1년 만에 다시 1조90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농심은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사고가 라면 매출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농심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이후 봄철 캠핑을 가는 나들이객이 크게 줄었다”며 “이들이 소비하는 컵라면 등의 매출 감소가 컸다”고 말했다.

라면의 주 판매처인 대형마트의 휴일 영업 중단도 악재로 꼽혔다. 신세계미래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마트 매출은 2013년 대비 0.3% 감소했다. 라면업계는 대형마트 전체의 매출 감소분 이상으로 라면 매출이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가정간편식(HMR)처럼 라면을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 판매가 크게 늘어난 것도 라면 매출 감소의 요인이다. 이마트는 순희네 빈대떡, 대구 송림동태탕 등 지역 맛집의 유명 음식을 간편식으로 출시해 지난해 186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홈플러스는 지난 14일 ‘싱글즈 프라이드’라는 가정간편식 브랜드를 내놨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가정 간편식 매출이 매년 30%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서울역점 등 50여개 점포에서 간편식만 모아 파는 별도 매대를 운영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간편식 찌개요리인 다담 브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2013년 대비 20% 늘었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유통·식품업체들이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자체상표(PB) 간편식을 늘리면서 라면 매출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라면시장은 그동안 큰 폭으로 성장하지는 않았더라도 규모가 줄어들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공업용 우지를 사용해 라면을 튀겼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른바 ‘우지파동’을 겪었을 때도 성장했던 시장이다. 1989년 11월 우지파동이 발생했지만 1990년 라면시장은 전년 대비 16.4% 신장했다.

농심 관계자는 “지난해 세월호 직후 시장 여건을 고려하면 2% 정도 감소에 그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기존 제품을 리뉴얼하고 해외 수출을 늘리는 등 불황 극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제품별 순위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신라면, 짜파게티, 안성탕면, 너구리, 삼양라면 등 기존 인기 브랜드들이 1~5위를 유지했다. 오뚜기 진라면이 8위에서 7위로 한 계단 상승했고, 삼양 불닭볶음면이 새롭게 10위권에 진입했다.

업체별로는 오뚜기의 약진이 돋보였다. 오뚜기의 점유율(금액기준)은 지난해 1월 14.7%에서 12월 17.5%로 늘어나면서 삼양식품(13.3%)을 제치고 2위를 굳혔다. 농심은 여름철인 7월 59.7%까지 점유율이 떨어졌다가 빨간 국물 라면의 인기가 높아지는 겨울이 되면서 지난달 기준 64.0%로 올라갔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