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로와 결별, 그리스 背水陣 성공할까
그리스 국민이 개혁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국가부채를 갚기 위해 2010년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그리스는 비극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경제성장이 5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실업률은 25%, 청년실업률은 50%에 달하며 전문 인력은 대거 해외로 빠져 나갔다. 아테네 시민 10명 중 1명이 무료급식소 신세를 지고 있다.

개혁의 고통이 무익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성장이 작년에는 0.8%로 회복했고 올해에는 1.5%를 전망한다. 재정의 균형도 달성했다. 하지만 이자로 인해 빚은 계속 늘어나고 부채 상환을 위해서는 4% 이상의 성장이 필요하다. 경제위기는 극단적인 정치세력의 등장을 돕는 법이다. 25일 총선을 앞두고 급진 좌파동맹인 시리자가 구제금융의 탕감과 긴축정책의 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워 돌풍을 일으켰다. 유럽연합(EU)과 약속한 구제금융 조건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유럽의 소국 그리스가 EU와의 협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시리자는 EU가 그리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그리스는 파산을 선언하게 되고, 유로존이 함께 붕괴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시리자의 협상력은 공멸의 위협이다. 하지만 그리스 구제금융의 가장 큰 몫을 떠안고 있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의 탈퇴를 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입장이다. 처음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험에 처했을 때는 유럽은행의 연쇄도산을 우려해 그리스를 무조건 도왔지만, 유럽중앙은행이 시중의 그리스 부실채권을 거의 사들였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붕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총선 승리가 확실시되는 시리자가 집권할 경우 그리스의 위기 시나리오는 타협, 탈퇴, 추방 세 가지다. 그리스 국민의 대다수는 유로존 탈퇴를 원하지 않는다. 시리자도 탈퇴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또 시리자가 과반 의석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해 독단으로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시리자가 온건한 협상조건을 내건다면 EU와의 타협에 성공할 수도 있다.

타협에 실패할 경우, 그리스는 유로존에서는 탈퇴하더라도 EU에는 남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규정은 그리스의 소망과 반대로 돼 있다. 2009년의 리스본 조약에 회원국이 EU에서 완전히 탈퇴할 수 있는 조항은 신설됐으나, 유로존에서만 탈퇴할 수 있는 조항은 아직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탈퇴해버리겠다면 막을 수는 없다. 이 경우 그리스는 뱅크런을 막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은행계좌를 동결하는 비상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미 그리스 시민들은 유로화를 장롱에 묻어두거나 해외에 예치하고 있다. 자국화폐로 복귀하게 되면 형편없는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지 않고 긴축정책만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EU는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추방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규정에도 없는 추방조치를 취하려면 모든 회원국의 단합된 의지가 필요하다.

당분간 유럽의 경제는 불안정해질 것이다. 그리스의 미래 시나리오 중에서 타협의 길로 갈 경우 양보를 요구하는 그리스와 강경하게 반대할 독일의 힘겨루기 때문에 길고 불확실한 협상이 불가피할 것이다. 만일 탈퇴와 추방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주게 된다. 다만 그리스의 교역량이 미미하기 때문에 세계 무역시장이 받는 영향은 작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유럽중앙은행이 경기 활성화와 부실국채 매입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양적 완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 수출기업은 유로화가 앞으로 더욱 약화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고상두 < 연세대 유럽정치학 교수 stko@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