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사회적 합의 필요한 '책임 읍면동제'
행정자치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하루 앞둔 지난 2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3층 브리핑룸. 행자부 등 8개 부처 합동으로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이 열렸다. 이날 브리핑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행자부가 발표한 책임읍면동제였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래 각 구청이 갖고 있던 인허가 권한 등의 업무를 일선 동(洞)으로 대폭 이관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인허가 권한과 단속 등의 업무가 이관된다면 당연히 구청 인력도 동으로 이전해야 한다. 구청 권한이 축소되는 대신 ‘미니구’가 여러 개 생겨나는 것이다. 구청장 권한이 지금보다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행자부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지방과 지속적으로 협의한 결과 책임읍면동제는 오히려 기초자치단체에서 원하고 있다”며 “초선은 모르겠지만 재선 단체장들은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임읍면동제가 도입되더라도 지자체 반발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과연 그럴까. 서울의 구청장과 여러 구청 고위 관계자들에게 책임읍면동제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행자부 설명과는 달랐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서울의 A구청장은 “구청장 권한을 약화시켜 사실상 구를 폐지하겠다는 정책”이라고 반발했다. 재선 단체장인 B구청장도 “정부가 지자체 의견을 무시한 채 제도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정부가 일선 현장을 제대로 모른 채 책상머리에서 세운 정책이라는 게 구청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 기초단체장들도 행자부 방침에 부정적이었다.

물론 이들의 의견이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장을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행자부 설명과는 달리 책임읍면동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주민들을 위해 현장 밀착형 행정서비스를 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정부가 구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책임읍면동제를 강행할 경우 무상보육 등 복지비 분담에 이어 또다시 중앙과 지방 간의 첨예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무작정 제도를 강행하기에 앞서 지자체와의 충분한 협의와 토론이 우선돼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갈등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강경민 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