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직엔 불편한 이단아가 필요하다
1348년 영국의 한 항구를 통해 들어온 흑사병의 창궐로 유럽 인구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세상의 종말처럼 보였던 이 혼란 속에서 중세 교회 사제들도 대거 목숨을 잃었다. 이단아로 간주되던 인문주의자들이 교회의 빈자리를 채웠다.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신앙을 잃었다. 귀족들은 교회 대신 새로 설립되던 대학교에 재산을 기부했다. 이후 유럽은 암흑기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시대로 도약했다.

혼란이 여백을 창출하면, 여백은 이단아를 수용한다.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혼란을 기회로 바꿀까》의 저자는 혼란을 혁신과 창조성의 원천으로 활용한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정부, 기업, 병원, 군대 등 거대하고 체계적인 조직에서 혼란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소개한다. 저자는 “조직에 빈 공간이 없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성장할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인터넷 언론으로 큰 성공을 거둔 허핑턴포스트는 할리우드 사람들이 친목을 나누던 북 살롱에서 우연히 탄생했다. 아인슈타인은 빛에 대해 온종일 토론한 뒤 좌절해 잠이 들었다가, 잠에서 깨는 순간 특수 상대성 이론이 떠올랐다.

저자는 생각이 달라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단아를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조직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DNA 복제 방법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캐리 멀리스는 스탠퍼드 대학원 시절, 환각제를 만들고 알몸 서핑을 즐기던 문제아였다. ‘슈퍼마리오’를 개발해 게임 업계의 판도를 바꾼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는 당시 개발자들 대부분이 엔지니어였던 것과 달리 디자이너 출신이었다. 저자는 “조직 내 혼란을 허락해 ‘계획된 우연’을 창조하라”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