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풍력타워 세계 1위 CS윈드 김성권 회장의 경영 키워드 '혁신, 뚝심, 신중'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CEO 오피스
혁신, 재생에너지가 미래다…12년前 풍력타워 제조로 사업전환
뚝심, "고용 늘면 국가이익"…베트남 관리 설득, 공장 땅 무상임대
신중, 2~3년치 물량 따야 증설…캐나다 이어 英·美에 공장 추진
영업 현장 뛰며 맡은 일뿐 아니라 시장 전체 보려 노력…새 세상이 열렸다
혁신, 재생에너지가 미래다…12년前 풍력타워 제조로 사업전환
뚝심, "고용 늘면 국가이익"…베트남 관리 설득, 공장 땅 무상임대
신중, 2~3년치 물량 따야 증설…캐나다 이어 英·美에 공장 추진
영업 현장 뛰며 맡은 일뿐 아니라 시장 전체 보려 노력…새 세상이 열렸다
세계 1위 풍력타워(풍력발전기의 날개와 터빈을 지탱하는 기둥) 제조업체인 CS윈드의 김성권 회장. 2009년 4만9000주에 이어 지난해에도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 중 9만4450주를 뚝 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비슷한 시기에 직원들이 회사에서 받은 14만9300주의 스톡옵션을 포함하면 127억원(공모가 기준)을 웃도는 큰 금액이었다.
CS윈드가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면서 한국 직원 65명(총 직원은 해외 직원 포함 1300여명)은 1인당 수천만~수억원을 손에 쥐었다.
김 회장의 직원 사랑은 주거비 지원으로 이어진다. 충남 천안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치솟는 전셋값을 걱정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 전세금 전액을 회사가 부담한다. 아파트 관리비도 한 달에 최대 20만원까지 보조해준다.
김 회장은 “2003년 아무것도 없는 베트남에서 풍력타워 공장을 처음 세울 당시 3년 넘게 주말도 반납하고 고생한 직원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끈질기게 설득하니 통하더라”
김 회장은 2003년 주변의 만류에도 자신이 운영하던 철구조물 생산업체(중산정공)의 진로를 풍력타워 제조업으로 180도 변경했다. 기존 사업이 위기를 겪은 탓도 있지만 국제유가 급등과 환경 문제로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미래산업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풍력발전기 타워는 높이 80~120m, 지름 4~5m, 두께 18~40㎜, 무게 100~250t의 철 구조물로 개당 100만달러(약 11억원) 안팎에 납품된다. 그는 “제조원가만 낮추면 20% 이상 영업이익률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시작한 풍력타워 사업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사업 초기 김 회장이 마련한 자금은 5억원. 아무리 물가가 싼 베트남이었지만 제조업 공장을 지으려면 최소 50억원은 필요했다. 그는 베트남 현지에 직원 8명과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베트남 정부 관계자를 6개월 동안 따라다녔다.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해 주면 일자리 창출과 법인세로 베트남 정부가 더 큰 이익을 볼 것이라고 설득했다. 투자금을 더 가져오라며 손사래를 쳤던 베트남 정부 관계자도 김 회장의 끈질긴 설득에 신뢰를 보였다.
공장 설계도 직접 한 ‘뚝심경영’
베트남 정부로부터 공장 부지를 5년간 무상으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지만 이번엔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대에 수억~수십억원에 이르는 공장 기계설비를 갖추는 문제였다. 고심 끝에 주변 공장에서 기계설비를 단기 임차해 사용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공장 부지와 기계설비에 돈을 거의 들이지 않은 셈이다. 뚝심으로 일군 공장에 수주 기회가 날아들었다. 베트남 진출 1년 만에 덴마크의 한 풍력발전 업체에서 55억원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무역학과 출신인 제가 공장 설계를 직접 할 정도로 새 사업 여건은 열악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3년을 일했습니다. 마침내 길이 보이더군요.”
풍력타워의 사업성은 해외 투자자들도 인정했다. 업종 전환 4년 만인 2007년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CS윈드에 472억원을 투자했다. 2013년에는 풍력타워가 산업통상자원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고 세계 시장점유율 1위(6.5%)에 올랐다. 베스타스, 제너럴일렉트릭(GE), 에네르콘 등 세계 10대 풍력발전기 업체 가운데 중국계 업체 세 곳을 제외한 7개 업체에 CS윈드 제품이 납품되고 있다.
CS윈드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2003년 매출 55억원에서 10년 만인 2013년 매출 2965억원, 영업이익 354억원의 기업으로 훌쩍 컸다. 지난해는 매출 3400억원, 영업이익률 20% 이상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3년치 계약룰’ 어기지 않아
풍력타워 사업이 성공한 배경엔 김 회장의 결단력이 있었지만 ‘신중하고, 또 신중하자’는 경영철칙도 자리 잡고 있다.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든 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최소 2~3년치 계약을 따낸 뒤 공장을 증설한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 1997년 외환위기 직전 800억원 규모의 외화대출을 받았다가 원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이를 1700억원에 갚았던 쓰라린 경험이 보약이 됐다.
캐나다 온타리온주에 있는 CS윈드 풍력타워 공장은 그의 이런 ‘2~3년치 계약룰’에 따라 지어졌다. 먼저 2~3년치 물량을 현지에서 수주하고 나서 700억원을 투자했다. 이 공장의 지난해 추정 흑자는 800억원으로 설립 2년 만인 지난해 상반기에 투자비를 모두 회수했다.
올해 말 영국 공장을 세울 계획인 CS윈드는 지멘스로부터 5년치 일감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해상 풍력의 메카로 떠오른 영국 시장에 진출하는 세계 최대 해상 풍력발전기 업체 지멘스에 2017년부터 풍력타워를 납품하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은 것이다.
김 회장은 “조만간 미국 텍사스주 풍력단지 건설에 참여해 GE, 지멘스에 풍력타워를 납품하는 계약도 진행 중에 있다”고 귀띔했다. 텍사스 주정부로부터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와 법인세 감면 등 150억원 규모의 지원도 약속받았다.
CS윈드의 한국인 직원 비율은 5% 수준이다. 그는 잇따라 해외에 공장을 세워 성공하는 이유로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이익을 환원해 현지인에게 존경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가야 새 세상이 보인다”
김 회장은 건설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0~1980년대 중동 진출을 활발히 했던 극동건설이 첫 직장이었다. 입사 직후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 자원했다. 가장 먼저 출근해 현장을 돌아보고, 작은 건축자재까지 꼼꼼히 살피는 모습이 눈에 띄어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의 한 업체에 스카우트됐다. 미국 업체에서도 김 회장의 실적은 단연 톱이었다. 1980년대 후반 당시에도 꽤 큰 금액인 2억원을 모아 1억원은 한국에 보내고, 나머지 1억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으면 배운 게 많지 않았을 겁니다. 영업 현장을 발로 뛰면서 맡은 분야뿐 아니라 시장 전체를 보려고 노력했더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요즘 현장에 나가길 꺼리는 청년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사업 26년째인 김 회장은 지난해 큰 위기를 겪었다. CS윈드 주가가 공모가보다 40% 가까이 폭락하는 바람에 공모에 참여한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이 큰 손실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김 회장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해 탈세했다는 의혹이 파다했다. 검찰은 김 회장의 탈세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12월22일 사건을 최종 무혐의 처리했다.
■ 김성권 회장 프로필
△1954년 전주 출생 △1972년 전주신흥고등학교 졸업 △1979년 중앙대 무역학과 졸업 △1979년 극동건설 입사 △1989년 중산정공 설립 △2006년 CS윈드로 사명 변경 △2008년 중소기업청 ‘벤처매출 1000억 기업상’ 수상 △2008년 베트남 호찌민 한인상공인연합회 회장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세계일류상품 및 생산기업 선정
김우섭/조진형 기자 duter@hankyung.com
CS윈드가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면서 한국 직원 65명(총 직원은 해외 직원 포함 1300여명)은 1인당 수천만~수억원을 손에 쥐었다.
김 회장의 직원 사랑은 주거비 지원으로 이어진다. 충남 천안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치솟는 전셋값을 걱정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 전세금 전액을 회사가 부담한다. 아파트 관리비도 한 달에 최대 20만원까지 보조해준다.
김 회장은 “2003년 아무것도 없는 베트남에서 풍력타워 공장을 처음 세울 당시 3년 넘게 주말도 반납하고 고생한 직원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끈질기게 설득하니 통하더라”
김 회장은 2003년 주변의 만류에도 자신이 운영하던 철구조물 생산업체(중산정공)의 진로를 풍력타워 제조업으로 180도 변경했다. 기존 사업이 위기를 겪은 탓도 있지만 국제유가 급등과 환경 문제로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미래산업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풍력발전기 타워는 높이 80~120m, 지름 4~5m, 두께 18~40㎜, 무게 100~250t의 철 구조물로 개당 100만달러(약 11억원) 안팎에 납품된다. 그는 “제조원가만 낮추면 20% 이상 영업이익률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시작한 풍력타워 사업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사업 초기 김 회장이 마련한 자금은 5억원. 아무리 물가가 싼 베트남이었지만 제조업 공장을 지으려면 최소 50억원은 필요했다. 그는 베트남 현지에 직원 8명과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베트남 정부 관계자를 6개월 동안 따라다녔다.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임대해 주면 일자리 창출과 법인세로 베트남 정부가 더 큰 이익을 볼 것이라고 설득했다. 투자금을 더 가져오라며 손사래를 쳤던 베트남 정부 관계자도 김 회장의 끈질긴 설득에 신뢰를 보였다.
공장 설계도 직접 한 ‘뚝심경영’
베트남 정부로부터 공장 부지를 5년간 무상으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지만 이번엔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대에 수억~수십억원에 이르는 공장 기계설비를 갖추는 문제였다. 고심 끝에 주변 공장에서 기계설비를 단기 임차해 사용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공장 부지와 기계설비에 돈을 거의 들이지 않은 셈이다. 뚝심으로 일군 공장에 수주 기회가 날아들었다. 베트남 진출 1년 만에 덴마크의 한 풍력발전 업체에서 55억원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무역학과 출신인 제가 공장 설계를 직접 할 정도로 새 사업 여건은 열악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3년을 일했습니다. 마침내 길이 보이더군요.”
풍력타워의 사업성은 해외 투자자들도 인정했다. 업종 전환 4년 만인 2007년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CS윈드에 472억원을 투자했다. 2013년에는 풍력타워가 산업통상자원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고 세계 시장점유율 1위(6.5%)에 올랐다. 베스타스, 제너럴일렉트릭(GE), 에네르콘 등 세계 10대 풍력발전기 업체 가운데 중국계 업체 세 곳을 제외한 7개 업체에 CS윈드 제품이 납품되고 있다.
CS윈드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2003년 매출 55억원에서 10년 만인 2013년 매출 2965억원, 영업이익 354억원의 기업으로 훌쩍 컸다. 지난해는 매출 3400억원, 영업이익률 20% 이상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3년치 계약룰’ 어기지 않아
풍력타워 사업이 성공한 배경엔 김 회장의 결단력이 있었지만 ‘신중하고, 또 신중하자’는 경영철칙도 자리 잡고 있다.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든 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최소 2~3년치 계약을 따낸 뒤 공장을 증설한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는 것. 1997년 외환위기 직전 800억원 규모의 외화대출을 받았다가 원화가치가 폭락하면서 이를 1700억원에 갚았던 쓰라린 경험이 보약이 됐다.
캐나다 온타리온주에 있는 CS윈드 풍력타워 공장은 그의 이런 ‘2~3년치 계약룰’에 따라 지어졌다. 먼저 2~3년치 물량을 현지에서 수주하고 나서 700억원을 투자했다. 이 공장의 지난해 추정 흑자는 800억원으로 설립 2년 만인 지난해 상반기에 투자비를 모두 회수했다.
올해 말 영국 공장을 세울 계획인 CS윈드는 지멘스로부터 5년치 일감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해상 풍력의 메카로 떠오른 영국 시장에 진출하는 세계 최대 해상 풍력발전기 업체 지멘스에 2017년부터 풍력타워를 납품하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은 것이다.
김 회장은 “조만간 미국 텍사스주 풍력단지 건설에 참여해 GE, 지멘스에 풍력타워를 납품하는 계약도 진행 중에 있다”고 귀띔했다. 텍사스 주정부로부터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와 법인세 감면 등 150억원 규모의 지원도 약속받았다.
CS윈드의 한국인 직원 비율은 5% 수준이다. 그는 잇따라 해외에 공장을 세워 성공하는 이유로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이익을 환원해 현지인에게 존경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가야 새 세상이 보인다”
김 회장은 건설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70~1980년대 중동 진출을 활발히 했던 극동건설이 첫 직장이었다. 입사 직후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 자원했다. 가장 먼저 출근해 현장을 돌아보고, 작은 건축자재까지 꼼꼼히 살피는 모습이 눈에 띄어 얼마 되지 않아 미국의 한 업체에 스카우트됐다. 미국 업체에서도 김 회장의 실적은 단연 톱이었다. 1980년대 후반 당시에도 꽤 큰 금액인 2억원을 모아 1억원은 한국에 보내고, 나머지 1억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부터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으면 배운 게 많지 않았을 겁니다. 영업 현장을 발로 뛰면서 맡은 분야뿐 아니라 시장 전체를 보려고 노력했더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요즘 현장에 나가길 꺼리는 청년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사업 26년째인 김 회장은 지난해 큰 위기를 겪었다. CS윈드 주가가 공모가보다 40% 가까이 폭락하는 바람에 공모에 참여한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이 큰 손실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김 회장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해 탈세했다는 의혹이 파다했다. 검찰은 김 회장의 탈세 혐의에 대해 수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12월22일 사건을 최종 무혐의 처리했다.
■ 김성권 회장 프로필
△1954년 전주 출생 △1972년 전주신흥고등학교 졸업 △1979년 중앙대 무역학과 졸업 △1979년 극동건설 입사 △1989년 중산정공 설립 △2006년 CS윈드로 사명 변경 △2008년 중소기업청 ‘벤처매출 1000억 기업상’ 수상 △2008년 베트남 호찌민 한인상공인연합회 회장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 세계일류상품 및 생산기업 선정
김우섭/조진형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