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나의 버킷리스트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금 살아있음이 가장 큰 행복
소중한 자연과 내 가족, 친구들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
소중한 자연과 내 가족, 친구들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떠오른다. 언제나 겁이 많고 어벙하기 짝이 없던 내가 선생님 손을 꼭 잡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풍경이 요즘 문득 꿈속처럼 떠오른다.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다른 건 못해도 괜찮단다.’ 선생님은 아마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의미 있는 칭찬의 말 한마디, 위로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한 사람의 영혼을 환하게 밝혀주는지 당신은 아는가? 그렇게 나는 고마운 위로의 말들을 거름 삼아 화가가 됐다.
그리고 가끔 ‘내가 죽으면 내가 그린 이 자식 같은 그림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불면의 밤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또 다 제 나름의 운명이 있으리라 믿는다. 자식을 아무리 많이 낳아도 다 제 복으로 살아가듯이. 아직은 많지 않은 지인들이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 자신도 이 세상 마지막 날을 맞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늘 잊고 산다.
어느 날 새벽 문득 눈을 떴을 때, 그날이 바로 오늘이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고마울 때가 있다. 아직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지만 이것도 착각이리라. 할 일은 제쳐두고 나는 남은 생애 안 가본 세상의 모든 길들을 걸어보고 싶다. 언젠가 가본 길들도 다시 가보고 싶다. 여행처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없다. 여행은 지는 해를 잡으려는 몸짓이고, 그 햇살의 온도를 오래 간직하는 일이다. 여행하는 마음은 사물을 소유하는 일보다, 눈길로 만져본 풍경의 소중함을 깨닫는 마음이다.
나이가 들어 혹시 내가 아주 오래 살게 된다면, 나는 세상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아주 착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나이가 들어 늙은 나를 보러 온다면, 빳빳한 5만원짜리 지폐가 담긴 세뱃돈 봉투를 마련할 것이다. 우리 할머니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기도 사진을 찍기도 미안할 만큼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아침과 수많은 대낮과 저녁과 밤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행복으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 아무래도 그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1순위일 것 같다. 어쩌면 행복이란 그 내용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떤 내용이든 알뜰히 읽어보는 성실한 독자의 편이다. 바람과 물과 공기와 흙과, 따뜻한 가족들과 친구들과 그리고 얼굴을 모르는 고마운 사람들로 가득한, 남은 생의 모든 페이지들을 천천히 구석구석 읽어보리라.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
‘너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다른 건 못해도 괜찮단다.’ 선생님은 아마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의미 있는 칭찬의 말 한마디, 위로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한 사람의 영혼을 환하게 밝혀주는지 당신은 아는가? 그렇게 나는 고마운 위로의 말들을 거름 삼아 화가가 됐다.
그리고 가끔 ‘내가 죽으면 내가 그린 이 자식 같은 그림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불면의 밤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또 다 제 나름의 운명이 있으리라 믿는다. 자식을 아무리 많이 낳아도 다 제 복으로 살아가듯이. 아직은 많지 않은 지인들이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 자신도 이 세상 마지막 날을 맞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늘 잊고 산다.
어느 날 새벽 문득 눈을 떴을 때, 그날이 바로 오늘이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고마울 때가 있다. 아직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지만 이것도 착각이리라. 할 일은 제쳐두고 나는 남은 생애 안 가본 세상의 모든 길들을 걸어보고 싶다. 언젠가 가본 길들도 다시 가보고 싶다. 여행처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은 없다. 여행은 지는 해를 잡으려는 몸짓이고, 그 햇살의 온도를 오래 간직하는 일이다. 여행하는 마음은 사물을 소유하는 일보다, 눈길로 만져본 풍경의 소중함을 깨닫는 마음이다.
나이가 들어 혹시 내가 아주 오래 살게 된다면, 나는 세상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아주 착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고 나이가 들어 늙은 나를 보러 온다면, 빳빳한 5만원짜리 지폐가 담긴 세뱃돈 봉투를 마련할 것이다. 우리 할머니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기도 사진을 찍기도 미안할 만큼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아침과 수많은 대낮과 저녁과 밤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행복으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 아무래도 그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1순위일 것 같다. 어쩌면 행복이란 그 내용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떤 내용이든 알뜰히 읽어보는 성실한 독자의 편이다. 바람과 물과 공기와 흙과, 따뜻한 가족들과 친구들과 그리고 얼굴을 모르는 고마운 사람들로 가득한, 남은 생의 모든 페이지들을 천천히 구석구석 읽어보리라.
황주리 < 화가 Orbitj@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