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 남북관계에 일부 변화 조짐이 보이지만 오히려 주변 상황은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통일준비위원회가 지난달 29일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고, 북한이 김정은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을 언급하고 비방을 자제하는 등 뭔가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도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고 전제조건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박 대통령의 비핵화 요구에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 중단 요구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대화 용의는 말뿐이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갈수록 강경해지는 미국의 대북제재다. 소니 해킹사건을 계기로 지난 4일 발동된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북한을 국제금융에서 완전히 배제할 근거까지 담고 있다.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해 김정일의 돈줄을 끊었던 제재 방식을 10년 만에 부활하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20일 국정연설에서 사이버 안보를 강조하며 어떤 형태로든 북한 문제를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접점을 늘리려는 한국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요 기류다.

분단 70년이란 상징적 시점에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것은 굳이 나무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통일문제는 남북간 자잘한 대화만 열린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주변 열강과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은 필수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미국이 대북 문제에서 자꾸 엇박자를 내는 것은 좋지 않다. 정부는 미국 측이 대북제재와 남북간 접촉은 별개라고 통보해왔다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북한은 대미 관계에서 한국을 지렛대처럼 이용해왔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이 안 되면 한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봉미통남(封美通南)으로 돌변하는 식이다. 3대 세습에다 핵, 인권문제로 코너에 몰린 북한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다. 남북 정상회담 등 몇 차례의 대화로 북한이 달라진 것도 전혀 없다. 통일은 비핵화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