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단순 교육서 창작으로 수준 높여…한예종 작품, 古典 반열 올릴 것"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한옥 경주 양동 관가정…美의 극치
金총장의 '건축학개론'…커다란 건물 높이 짓는 것보다
그안에 사람·삶 담아야 진짜 건축…북·서촌은 한옥의 서민 아파트 격
그속의 '교육학개론'…취임 후 슬로건…건축용어 '重創'
낡은 건물 헐지 않고 고친다는 뜻…새로운 창작, 융합 통해서만 나와
올해 융합예술센터 본격 가동나서
金총장의 '건축학개론'…커다란 건물 높이 짓는 것보다
그안에 사람·삶 담아야 진짜 건축…북·서촌은 한옥의 서민 아파트 격
그속의 '교육학개론'…취임 후 슬로건…건축용어 '重創'
낡은 건물 헐지 않고 고친다는 뜻…새로운 창작, 융합 통해서만 나와
올해 융합예술센터 본격 가동나서
경복궁 서쪽에 있는 통의동 효자동 청운동 등을 아우르는 곳이 서촌이다. 경복궁 동쪽 삼청동, 가회동의 북촌과 더불어 서울에서 한옥 등 오래된 건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57)을 만난 곳은 서촌의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서양식당 ‘PS 94th 스테이크&와인’이다. 탁자가 일곱 개에 불과한 골목 안쪽의 작은 식당이다. 간판 크기도 작아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적산가옥(敵産家屋·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주택)을 뜯어 약간만 수리한 건물이에요. 메뉴는 많지 않지만 음식 맛이 좋아 한 달에 한두 번은 찾는 곳입니다. 집(청운동)도 걸어갈 거리에 있죠.”
김 총장은 청와대 영빈관인 삼청장 등을 설계하고 문화재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등을 지낸 고건축 전문가다. 한국건축을 알기 쉽게 풀어쓴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졌다.
◆“건축은 건물이 아니다”
첫 번째 요리로 가자미 구이가 나왔다. 가자미를 종이포일에 싸 익혀냈다. 담백하면서도 촉촉한 맛이 일품이다. 김 총장이 고른 이탈리아 와인 ‘요리오(Jorio)’가 곁들여졌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인근의 몬테 풀치아노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김 총장은 품종이나 브랜드가 아닌 포도 산지로 와인을 기억한다. 그는 1990년 영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 유럽의 오래된 마을을 찾아다녔다. 그때 찾은 곳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 보르도 근처의 생테밀리옹이었다. 중세 건축물이 보존돼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와인 산지로 유명하다. 와인이 맛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그가 방문한 이탈리아의 몬테 풀치아노, 몬탈치노도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고 있는 도시이자 좋은 와인이 나는 곳이다. “좋은 건축물이 있는 도시에서 만든 와인을 마셔서 실패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총장은 유럽의 중세 건축물이 보존된 마을을 다니며 “한 명의 천재보다는 여러 명의 우등생이 있는 마을이 훨씬 더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나의 커다란 건물이 솟아 있는 곳보다는 사람의 삶이 담긴 도시나 마을에서 진정한 건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건축은 건물이 아니다”고 했다. 건축은 벽과 천장이 있는 단순한 건물이 아닌 그곳에 사는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옥은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집”
이런 마을과 서촌, 북촌을 비교하면 어떨까. 와인 한 모금으로 숨을 돌린 뒤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서촌이나 북촌에 있는 한옥은 정통 한옥이라고 볼 수 없어요.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지어진, 요새로 치면 서민 아파트예요. 서울에 이런 건물이 있으니 전통적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한옥이 가장 몰락했을 때 지어졌죠.”
그는 농촌사회였던 조선시대 특성상 지방에 있는 대지주들의 한옥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했다. 가장 인상적인 한옥으로 경주 양동마을의 ‘관가정’을 꼽았다. 성종과 중종 때의 명신이자 청백리였던 우재 손중돈이 살던 집이다.
“대학원 시절 관가정에 가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40평(132㎡)도 안 되는 작은 한옥인데 거주자에게 이렇게 다양한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 하고 놀랐죠. 당시 현대건축에 대해 갑갑함 같은 게 있었는데 관가정을 보고 내가 갈 길이 이곳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건축 역사를 공부하게 됐죠.”
김 총장은 한옥을 “정신이 풍요로운,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집”이라고 말했다. 크고 화려한 건물은 사람을 쉽게 감동시킨다. 작고 단순하게 만들어서는 감동을 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건축의 본질이고 한옥이 이런 정신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모든 한옥이 그런 것은 아니다. “관가정은 번뜩이는 건축가가 창조해낸 산물이에요. 외관은 전통 가옥이지만 기와만 벗겨내면 완벽한 현대 건축물이죠. 제가 지금 이 정도의 건물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요. 북촌이나 서촌의 한옥에선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연으로 택한 건축 공부
다음 메뉴는 한우 채끝살로 만든 스테이크였다. 3㎝ 남짓한 두툼한 고기를 레어로 살짝 구워냈다. 똑같은 와인이 한 병 더 나왔다. 메뉴와 함께 화제도 바꿨다.
김 총장이 건축 공부를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가 고등학생이던 1970년대에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남자라면 이과에 진학해 기술을 익히거나 의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던 시절이다. 그도 이과에 재학 중이었고 부모님은 의대 진학을 원했다.
하지만 고교 2학년 때 역사에 관심이 갔다. “역사 시간이면 가슴이 뛰는데 물리, 화학 시간에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결국 고3 때 사학과에 가겠다고 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줬어요. 그때는 문·이과를 바꿔 시험 보면 20점을 깎는 이상한 제도도 있었거든요. 전과는 결국 못했어요. 마지막 반발이 의대 대신 공대를 가겠다는 것이었죠. 공학계열로 입학하고 전공은 나중에 결정했는데 그때 발견한 게 건축학과였어요. 건축학과에서 건축사를 전공했습니다.”
김 총장은 자신의 삶을 두고 “내 선택대로 한 게 별로 없다”며 “건축을 공부한 것도, 한예종에 온 것도, 책을 낸 것도 순전히 우연의 연속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평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의지로 이뤄낸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결혼, 다른 하나는 직선제로 치러진 한예종 총장이다.
◆“새로운 창작은 융합에서 나온다”
음식 접시는 바닥을 드러냈지만 와인이 아직 남았다. 주방에서 모둠 치즈를 빠르게 준비해 내왔다. 김 총장은 1997년 한예종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임용됐고 이후 교학처장과 기획처장 등을 맡았다. 한예종의 살림살이와 행정을 모두 겪어본 셈이다. 그만큼 한예종의 현실과 개선해야 할 점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8월 취임 당시 그는 ‘중창(重創)’을 슬로건으로 들고 나왔다. 낡은 건물을 헐지 않고 고쳐서 새롭게 짓는다는 뜻의 건축 용어다. 로마 판테온 신전, 파리 루브르 궁전은 물론 한국의 종묘나 통도사도 중창을 통해 위대한 건축물로 이름을 남겼다.
“프랑스 시골 마을에 가보면 중세 시대 건물인데 그 안에선 첨단 문명을 모두 누릴 수 있어요. 뼈대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계속 고쳐 나가는 것이죠.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역사성과 현대성을 모두 가질 수 있으니까요.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예종이 지금까지 쌓아온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목표를 더하자는 것이죠.”
처음 한예종의 목표는 뛰어난 학생들이 외국에 유학갈 필요없이 한국에서 세계적 수준의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지금은 한해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학생만 200명가량으로 늘었다. 김 총장이 생각하는 한예종의 앞으로 방향은 ‘고전의 고향’이다. 한예종에서 만든 작품이나 작곡, 연주가 훗날 고전의 반열에 오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에서 창작의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뛰어난 기량은 물론 리더십,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합니다. 새로운 창작은 융합을 통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올해 융합예술센터도 조성한다. 다른 분야의 예술을 융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과의 결합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곳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총장 임기는 2017년 8월까지다. 임기가 끝난 뒤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아시아 각국의 불교 건축사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요. 불교 건축물은 국가마다 모두 형태가 달라요.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원형이 있지만 불교는 ‘장엄해야 한다’ 같은 추상적 기준만 있거든요. 한·중·일만 해도 절의 모습이 전혀 다르죠. 불교 건축의 이해는 결국 아시아 건축 전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김봉렬 총장의 단골집 PS 94th 스테이크&와인
참숯에 구운 한우 채끝살, 살살 녹아
설치미술 작가 이불 씨의 동생인 이경 대표가 2011년 9월부터 운영 중인 서양식당. 처음에는 ‘PS 바&필름’이라는 와인 전문 바(bar)였다. 지난해 9월 음식 메뉴를 강화하면서 상호 뒷부분도 ‘스테이크&와인’으로 바꿨다. PS는 이 대표가 예전에 운영하던 바의 이름이었고 94th는 가게 주소의 지번에서 따왔다.
주력 메뉴는 1++ 등급 한우 채끝살을 참숯으로 구운 스테이크다. 400g은 8만6000원, 600g은 12만9000원이다. 프랑스풍의 가자미 요리(4만5000원)도 인기가 많다. 가자미를 종이 포일로 말아 올리브, 레몬 등과 함께 익혀냈다. 사이드 메뉴로 모둠 채소구이, 크림소스 시금치, 가지 오븐요리 등도 판매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칠레 등의 와인을 30~40종가량 구비하고 있다. 4만~20만원 수준. 서울시 자하문로28가길 1. (02)737-0965
전문예술인 양성 목표…문화예술계 인사 배출
1992년 전문예술인 양성을 목표로 세워진 국립 교육기관이다. 음악원을 시작으로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이 차례대로 개원했다. 부속시설로 음악, 무용, 전통예술 분야의 영재(초등 3년~고교 3년)를 교육하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도 운영 중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신지아 등 연주자와 장유정 뮤지컬 연출가 등 여러 분야에서 문화예술계 인사를 배출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적산가옥(敵産家屋·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주택)을 뜯어 약간만 수리한 건물이에요. 메뉴는 많지 않지만 음식 맛이 좋아 한 달에 한두 번은 찾는 곳입니다. 집(청운동)도 걸어갈 거리에 있죠.”
김 총장은 청와대 영빈관인 삼청장 등을 설계하고 문화재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등을 지낸 고건축 전문가다. 한국건축을 알기 쉽게 풀어쓴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로 대중에게도 잘 알려졌다.
◆“건축은 건물이 아니다”
첫 번째 요리로 가자미 구이가 나왔다. 가자미를 종이포일에 싸 익혀냈다. 담백하면서도 촉촉한 맛이 일품이다. 김 총장이 고른 이탈리아 와인 ‘요리오(Jorio)’가 곁들여졌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인근의 몬테 풀치아노에서 생산된 와인이다.
김 총장은 품종이나 브랜드가 아닌 포도 산지로 와인을 기억한다. 그는 1990년 영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 유럽의 오래된 마을을 찾아다녔다. 그때 찾은 곳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 보르도 근처의 생테밀리옹이었다. 중세 건축물이 보존돼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와인 산지로 유명하다. 와인이 맛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그가 방문한 이탈리아의 몬테 풀치아노, 몬탈치노도 오래된 건축물을 보존하고 있는 도시이자 좋은 와인이 나는 곳이다. “좋은 건축물이 있는 도시에서 만든 와인을 마셔서 실패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총장은 유럽의 중세 건축물이 보존된 마을을 다니며 “한 명의 천재보다는 여러 명의 우등생이 있는 마을이 훨씬 더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나의 커다란 건물이 솟아 있는 곳보다는 사람의 삶이 담긴 도시나 마을에서 진정한 건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건축은 건물이 아니다”고 했다. 건축은 벽과 천장이 있는 단순한 건물이 아닌 그곳에 사는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옥은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집”
이런 마을과 서촌, 북촌을 비교하면 어떨까. 와인 한 모금으로 숨을 돌린 뒤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서촌이나 북촌에 있는 한옥은 정통 한옥이라고 볼 수 없어요.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지어진, 요새로 치면 서민 아파트예요. 서울에 이런 건물이 있으니 전통적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한옥이 가장 몰락했을 때 지어졌죠.”
그는 농촌사회였던 조선시대 특성상 지방에 있는 대지주들의 한옥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했다. 가장 인상적인 한옥으로 경주 양동마을의 ‘관가정’을 꼽았다. 성종과 중종 때의 명신이자 청백리였던 우재 손중돈이 살던 집이다.
“대학원 시절 관가정에 가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40평(132㎡)도 안 되는 작은 한옥인데 거주자에게 이렇게 다양한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 하고 놀랐죠. 당시 현대건축에 대해 갑갑함 같은 게 있었는데 관가정을 보고 내가 갈 길이 이곳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건축 역사를 공부하게 됐죠.”
김 총장은 한옥을 “정신이 풍요로운,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집”이라고 말했다. 크고 화려한 건물은 사람을 쉽게 감동시킨다. 작고 단순하게 만들어서는 감동을 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건축의 본질이고 한옥이 이런 정신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물론 모든 한옥이 그런 것은 아니다. “관가정은 번뜩이는 건축가가 창조해낸 산물이에요. 외관은 전통 가옥이지만 기와만 벗겨내면 완벽한 현대 건축물이죠. 제가 지금 이 정도의 건물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요. 북촌이나 서촌의 한옥에선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연으로 택한 건축 공부
다음 메뉴는 한우 채끝살로 만든 스테이크였다. 3㎝ 남짓한 두툼한 고기를 레어로 살짝 구워냈다. 똑같은 와인이 한 병 더 나왔다. 메뉴와 함께 화제도 바꿨다.
김 총장이 건축 공부를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가 고등학생이던 1970년대에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남자라면 이과에 진학해 기술을 익히거나 의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던 시절이다. 그도 이과에 재학 중이었고 부모님은 의대 진학을 원했다.
하지만 고교 2학년 때 역사에 관심이 갔다. “역사 시간이면 가슴이 뛰는데 물리, 화학 시간에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결국 고3 때 사학과에 가겠다고 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줬어요. 그때는 문·이과를 바꿔 시험 보면 20점을 깎는 이상한 제도도 있었거든요. 전과는 결국 못했어요. 마지막 반발이 의대 대신 공대를 가겠다는 것이었죠. 공학계열로 입학하고 전공은 나중에 결정했는데 그때 발견한 게 건축학과였어요. 건축학과에서 건축사를 전공했습니다.”
김 총장은 자신의 삶을 두고 “내 선택대로 한 게 별로 없다”며 “건축을 공부한 것도, 한예종에 온 것도, 책을 낸 것도 순전히 우연의 연속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평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의지로 이뤄낸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결혼, 다른 하나는 직선제로 치러진 한예종 총장이다.
◆“새로운 창작은 융합에서 나온다”
음식 접시는 바닥을 드러냈지만 와인이 아직 남았다. 주방에서 모둠 치즈를 빠르게 준비해 내왔다. 김 총장은 1997년 한예종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임용됐고 이후 교학처장과 기획처장 등을 맡았다. 한예종의 살림살이와 행정을 모두 겪어본 셈이다. 그만큼 한예종의 현실과 개선해야 할 점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8월 취임 당시 그는 ‘중창(重創)’을 슬로건으로 들고 나왔다. 낡은 건물을 헐지 않고 고쳐서 새롭게 짓는다는 뜻의 건축 용어다. 로마 판테온 신전, 파리 루브르 궁전은 물론 한국의 종묘나 통도사도 중창을 통해 위대한 건축물로 이름을 남겼다.
“프랑스 시골 마을에 가보면 중세 시대 건물인데 그 안에선 첨단 문명을 모두 누릴 수 있어요. 뼈대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계속 고쳐 나가는 것이죠.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역사성과 현대성을 모두 가질 수 있으니까요.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예종이 지금까지 쌓아온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목표를 더하자는 것이죠.”
처음 한예종의 목표는 뛰어난 학생들이 외국에 유학갈 필요없이 한국에서 세계적 수준의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지금은 한해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학생만 200명가량으로 늘었다. 김 총장이 생각하는 한예종의 앞으로 방향은 ‘고전의 고향’이다. 한예종에서 만든 작품이나 작곡, 연주가 훗날 고전의 반열에 오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에서 창작의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뛰어난 기량은 물론 리더십,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합니다. 새로운 창작은 융합을 통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올해 융합예술센터도 조성한다. 다른 분야의 예술을 융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과의 결합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곳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총장 임기는 2017년 8월까지다. 임기가 끝난 뒤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아시아 각국의 불교 건축사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요. 불교 건축물은 국가마다 모두 형태가 달라요.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원형이 있지만 불교는 ‘장엄해야 한다’ 같은 추상적 기준만 있거든요. 한·중·일만 해도 절의 모습이 전혀 다르죠. 불교 건축의 이해는 결국 아시아 건축 전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김봉렬 총장의 단골집 PS 94th 스테이크&와인
참숯에 구운 한우 채끝살, 살살 녹아
설치미술 작가 이불 씨의 동생인 이경 대표가 2011년 9월부터 운영 중인 서양식당. 처음에는 ‘PS 바&필름’이라는 와인 전문 바(bar)였다. 지난해 9월 음식 메뉴를 강화하면서 상호 뒷부분도 ‘스테이크&와인’으로 바꿨다. PS는 이 대표가 예전에 운영하던 바의 이름이었고 94th는 가게 주소의 지번에서 따왔다.
주력 메뉴는 1++ 등급 한우 채끝살을 참숯으로 구운 스테이크다. 400g은 8만6000원, 600g은 12만9000원이다. 프랑스풍의 가자미 요리(4만5000원)도 인기가 많다. 가자미를 종이 포일로 말아 올리브, 레몬 등과 함께 익혀냈다. 사이드 메뉴로 모둠 채소구이, 크림소스 시금치, 가지 오븐요리 등도 판매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칠레 등의 와인을 30~40종가량 구비하고 있다. 4만~20만원 수준. 서울시 자하문로28가길 1. (02)737-0965
전문예술인 양성 목표…문화예술계 인사 배출
1992년 전문예술인 양성을 목표로 세워진 국립 교육기관이다. 음악원을 시작으로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이 차례대로 개원했다. 부속시설로 음악, 무용, 전통예술 분야의 영재(초등 3년~고교 3년)를 교육하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도 운영 중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신지아 등 연주자와 장유정 뮤지컬 연출가 등 여러 분야에서 문화예술계 인사를 배출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