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관료들이여, 라스베이거스에 놀러가시라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를 둘러보러 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다녀왔다. 행사 주제인 사물인터넷(IoT)의 미래를 살펴보는 일도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무엇보다 행사 규모 자체가 놀라울 뿐이었다. 바로 라스베이거스의 경쟁력이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는 물론이다. 시내 모든 호텔이 CES 관련 행사로 북새통이었다. 첫날 삼성과 LG의 기자회견장과 전시장,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의 CES 기조연설 등 주로 한국 관련 행사만 찾아봤는데도 이동 거리가 줄잡아 15㎞였다. 물론 실내 이동은 제외한 거리다. 라스베이거스 도심 전체가 CES 행사장인 셈이다. 참가자가 무려 16만명이다. 이들이 CES 출입증을 목에 걸고 라스베이거스 도심을 가득 채운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더 이상 도박과 환락의 도시가 아니었다. 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전시회와 회의가 2만2000여건이었다. 행사 일정을 이틀씩만 잡아도 적어도 120개가 넘는 행사가 매일 열리는 셈이다. 그 전시회에 몰려든 사람이 540만명이다. 전체 관광객 4100만명의 13%이지만 이들은 씀씀이가 다르다. 회삿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수입의 60%가 MICE 산업에서 나오는 이유다. 명실상부한 MICE의 도시다.

라스베이거스가 탈(脫)도박에 나선 것은 1980년대 중반이다. 퇴폐적 이미지가 도시 발전에 발목을 잡은 데다 다른 주들도 도박을 합법화하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카지노는 물론 호텔 방 채우기가 어려웠다. 그 대안이 컨벤션산업이었다. 스티브 윈 등 이름도 쟁쟁한 기업가들은 라스베이거스를 가족 단위의 리조트와 비즈니스를 위한 컨벤션 거점으로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의 중심지인 스트립거리에 초대형 호텔과 컨벤션시설이 들어섰다. 지방정부도 움직였다. 호텔 숙박료에서 걷은 세금을 대거 컨벤션산업에 쏟아부었다. 웬만한 규제도 다 풀었다.

라스베이거스 최대 강점은 숙박시설이다. 전체 객실 수가 15만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의 1.5배 규모다. 객실 수 3만개에도 못 미치는 서울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MICE 시설은 더 기가 막히다. 전시면적 20만㎡의 컨벤션센터 외에 9대 리조트가 모두 초대형 MICE 시설을 확보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전체 MICE 면적이 무려 100만㎡로 여의도 3분의 1 규모일 정도다.

교통 인프라도 든든하다. 라스베이거스공항의 비행기 이착륙 건수는 하루 900편이 넘는다. 지난해 이 공항을 통해 드나든 여행객이 4200만명이다. 아시아허브라는 인천국제공항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라스베이거스는 변신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엔 스포츠 관광과 의료 관광이다. 스포츠 관광을 위해 이미 건설에 들어간 초대형 경기장이 3곳이다. 라스베이거스에 오면 언제든 NBA 등 인기 프로 스포츠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의료 관광도 스피드를 내고 있다. 주변의 의료시설과 의료 교육 인프라는 물론 외부 의료진까지 의료 관광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성형 치과 노화방지 등 비즈니스맨을 위한 의료 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과감한 규제 완화로 민간의 노력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카지노에선 여전히 담배를 피워도 오케이다. 하다못해 의료산업 육성을 위해 의료용 마리화나 사용을 허가한 라스베이거스시다.

한국 관료 몇몇이 이번에 라스베이거스를 다녀갔다지만 관광산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가 다녀갔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러니 이런 식이다. 영리병원이 허용되지 않는데 의료관광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관광지에 케이블카 하나 놓는 데도 하세월이고, 카지노 논쟁이 표류한 지 벌써 몇 년이다. 우리가 내쫓은 레고랜드는 지금 말레이시아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데도 100억달러짜리 복합리조트를 짓겠다는 외자를 또 내쫓는 강심장이다. 호텔은 청소년 유해시설로 분류돼 서울에서만도 2010년부터 건립되지 못한 케이스가 70여건이다. 관광객은 잘 곳이 없어 지방을 전전하는데 말이다. 관료들이 제발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다녀오길 바란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