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글로벌 기업은 이제까지 낮은 인건비, 규모의 경제 실현 등의 관점에서 신흥국 시장에 진출해 왔다. 하지만 신흥국 토종 기업들이 자국에서 글로벌 기업 및 중소기업과 경쟁하며 역량을 키우고 빠르게 글로벌 기업의 강점을 캐치업(Catch-up)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이 신흥국 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2013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156명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3%가 신흥국 진출의 가장 큰 위협으로 글로벌 기업이 아닌 신흥국 현지 토종 기업을 꼽았다.

그럼에도 신흥국 토종 기업을 상대로 글로벌 기업만의 고유 역량을 현지에 맞게 강점화해 차별화된 전략으로 신흥국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있다.

많은 기업은 고사양의 프리미엄 제품에서 제품 기능을 다운그레이드해 저가 시장에 접근한다. 반면 인도 질레트(Gillette)는 현지 마켓 인사이트를 통한 제품 가치 차별화와 저원가를 동시에 확보함으로써 저가 시장 대응에 성공했다. 질레트의 저가 면도기인 질레트 가드(Gillette Guard) 출시 이전에 인도 소비자들에게 저가 면도기는 그저 면도를 할 수 있는 값싼 물건으로 포지셔닝돼 있었다. 그러나 질레트는 소비자들이 어두운 곳에서도 베이지 않는 안전성, 털로 인한 칼날 막힘 등의 불편함이 없는 편의성 등 새로운 핵심 가치와 함께 인도 현지 생산기지를 활용해 원가 경쟁력까지 확보했다. 현재까지 인도에서 판매되는 3개의 저가 면도기 중 2개는 질레트 제품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세븐일레븐(7-Eleven)이나 중국의 이케아(IKEA)는 기존 글로벌 매장 운영 방식과는 다르게 현지 소비자들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현지만의 독특한 매장 운영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다. 특히 중국의 이케아는 다른 매장과 달리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품을 무제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이케아 최초 카페테리아 도입 등의 차별적 매장 운영 방식을 택했다. 중국 소비자들이 장거리 운전을 감수하고서라도 인근 쇼핑센터보다 이케아를 찾아가고 싶어 하도록 만든 것이다. 또 이케아를 각종 모임 장소로 부각시켜 새로운 트렌드 제품 체험 매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아지오(Diageo) 케냐의 경우 무허가 선술집이나 영세 소매상을 대상으로 디아지오 특유의 유통 및 매장 운영·관리 노하우 등을 접목했다. 그 결과 케냐 최초의 사업 협력 모델을 선제적으로 제시해 케냐의 미개발 주류 시장 장악에 성공했다.

이 사례들처럼 선진국 시장과는 별개로 신흥국 시장에서 장기적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들은 신흥국 시장을 선진국 시장의 표준화된 주력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하나의 ‘도구(Tool)’적 시각이 아닌 ‘목표(Target)’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신흥국 기업들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글로벌 기업 특유의 무형(마켓 인사이트, 상품 기획, 사업 육성 등)의 현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과거 글로벌 대형마트 까르푸(Carefur)나, 포털 업체 야후(Yahoo)가 한국에서 철수한 사례는 이마트나 네이버와 같은 현지 토종 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해가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역으로 잘 보여줬다.

신흥국 토종 기업 역시 노동 집약적 경쟁에서 벗어나 기술 집약적 경쟁을 시작했다.

향후 신흥국에서의 기업 간 경쟁은 토종과 글로벌 구분 없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신흥국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신흥시장만을 위한 특유의 시장 선도적 접근 전략이 필요한 때다.

이태영 < 책임연구원 taelee@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