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모두 변해야 한국 경제가 산다
한국 경제는 진정 위기인가. 새해 벽두부터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내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당장은 아니지만 급변하는 대내외 여건에 대응하지 못하면, 저성장 함정에 빠져 소득 분배 구조가 악화되고 정치사회 갈등이 심화돼 영영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정치 일정상 올해는 위기 극복에 전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해를 허송세월하면 인기영합적 정치 구호가 더욱 난무하고 계층 간 불화와 반목은 심화돼 한국 경제는 일본처럼 장기 침체 국면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다행히 위기 극복 방향은 설정됐다. 경제 구조 개혁과 국가 혁신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 엄청난 역사적 과제를 누가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위기를 해소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경제활동의 핵심주체인 정부, 대기업, 노조와 국민 모두가 이전과 다른 시대적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우선 정부 부문이 개혁과 혁신의 선봉에 서야 한다. 한국의 경제 발전은 유능하고 사명감 넘치는 정부 관료들의 열정에 의해 주도됐다. 그러나 자칫 과거 업적만 생각하는 ‘성공의 덫’에 빠지면, 각 부처는 집단논리에 얽매여 기존 제도나 관행에 안주하려 들게 된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개혁 분위기 조성이 시급한 이유다. 부처나 기관별 개혁 목표를 명확히 하고, 획기적인 성과별 보상 체계와 과감한 발탁 인사 제도를 확립하는 한편, 개혁에 대한 과도하고 불합리한 사후 감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서비스업 육성, 노동시장 개혁, 재정 합리화와 같은 핵심 규제혁신 과제는 민관 협업을 이루는 전담팀을 구성하고 목표와 기한을 정해 집중 추진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상생 협력의 주도자가 돼야 한다. 국내 대기업은 한국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창출한 세계적 명품이다. 사막과 같은 산업 불모지에서 우리 기업가들은 특유의 창조성과 집념으로 자동차, 조선, 전자업 등을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고 국부를 증대시켰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국내외적으로 소득 격차가 확대됨에 따라 대기업은 자본주의 시장 체제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까지 부여받고 있다. 축적된 부의 활발한 사회환원을 통해 계층 간 갈등을 해소, 자유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선한 기업시민의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연결망(SNS) 확대로 생산과 소비 활동의 세계화가 확산되는 시대에 경제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원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것은 최상의 영업 전략이기도 하다.

노조도 국가 경제 발전에 참여하는 길로 나서야 한다. 1970~1980년대 노조는 경제적 불의에 맞서 희생과 고통을 무릅쓰는 감사와 감동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값진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아쉽게도 대표성을 지닌 대기업 노조는 소수 조합원들만의 이해관계에 집착해 노조 활동의 공감대를 잃고 있다. 노조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전체 근로자들의 고용 증가와 실익을 증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는 데 앞장 서 이전의 명예와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

국민의식도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 국민은 그때그때 시대정신을 발휘해 경제와 사회 발전을 이끌었다. 경제개발 시대에는 유교적 충효 정신을 기반으로 헌신했으며, 비판과 저항 의식으로 민주화를 달성했다. 이제는 소모적 대립을 뛰어넘는 화합과 공존의 정신으로 경제혁신의 성공을 뒷받침해야 한다. 국가 역량이 결집되려면 굳건한 지도력(leadership)도 중요하지만, 긍정적이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고 협력하며 따라가는 추종력(followership)의 강화도 매우 시급하다.

유병규 <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 yabraham113@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