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전이다] 좋은 인재 가득한 한국 의료산업, 혁신 가로막는 규제에 '제자리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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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돌파 (下) 질시·반목 없애야 개척정신 생긴다
투자개방형 병원·원격 진료 등 차단
中·日 등에 의료관광객 뺏겨 성장 둔화
투자개방형 병원·원격 진료 등 차단
中·日 등에 의료관광객 뺏겨 성장 둔화
의료산업은 한국의 인재가 가장 많이 몰리는 분야의 하나다. ‘전국 어디에 있는 의과대학의 대학입시 커트라인이 서울대의 다른 학과보다 높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의료산업의 부가가치는 다른 산업에 비해 낮은 편이다. 정해진 의료수가에 맞추다 보니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 공공의료 개념에 꽉 묶인 병원들은 외부에서 자본을 유치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싱가포르나 중국 태국 등이 ‘의료 허브’를 내세우며 세계 유수의 병원과 의사, 환자들을 적극 유치하지만 한국의 병원들에서는 우수한 의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다. 아시아는 ‘의료 허브’ 전쟁 중
싱가포르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2013년 100만명을 넘어섰다. 그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21만1218명)의 5배였다. 민간 병원들은 물론 싱가포르시립병원까지 금융회사와 일반인의 투자가 가능한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바꾼 덕분이다. 싱가포르는 또 세계 160개 의과대학 졸업생에게 싱가포르에서 의사면허를 딸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우수한 의사들이 싱가포르에 와서 일하라는 취지다.
중국도 지난해 베이징 상하이 톈진 장쑤성 푸젠성 광둥성 하이난성 등 7개 지역에서 외국인의 병원 투자를 전면 허용했다. 세계 유수의 병원들을 중국으로 끌어들여 ‘아시아 의료 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과 대만도 무섭게 추격 중이다. 일본은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뒤 ‘메디컬엑설런스재팬(MEJ)’을 출범시키고 무비자 입국 허용, 체류기간 연장 등을 통해 외국인 환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대만은 언어적·문화적 장벽이 없는 중국 본토 환자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은 문 닫는 병원 늘어
한국은 뛰어난 의사가 많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외국인 환자가 오고 있다. 한국 병원에서 성형이나 외과수술을 받으려는 외국인이 많다.
하지만 증가 추세는 둔화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25만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8.4%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37%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성형외과 원장은 “공항이나 쇼핑센터에서도 외국어로 된 의료 광고를 할 수 없다”며 “내년부터는 각종 블로그에 성형수술 체험 후기나 수술 전후 사진을 올리는 것도 금지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홍보를 아예 하지 말라는 건데, 그래놓고 해외 환자 유치를 늘리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내수 시장에만 의존하는 병원이나 약국 등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3년 폐업한 일반병원·한의원·약국 등은 5256개로 2009년 4662개에 비해 13% 늘었다. 병원컨설팅업체 골든와이즈닥터스의 박기성 대표는 “최근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 병원들이 중동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파산하는 의사가 급증하는 등 상당히 좋지 않다”며 “병원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의료산업의 현실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험실 못 벗어나는 ‘헬스+IT’
정보기술(IT)과 접목된 헬스케어 산업도 10년째 답보 상태다. 원격진료는 IT 강국인 한국이 유리한 분야인데도 관련 의료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의료단체 등에서 “대형병원과 거대 기업들만 살찌운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 등 국내 IT기업들이 모바일헬스케어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제대로 된 사업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LG전자도 수년 전 휴대폰으로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당뇨폰을 내놨으나 판매 대리점마다 의료기기 판매업자로 등록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정기택 보건산업진흥원장은 “대한민국의 0.1% 인재라는 의사들이 좀 더 다양한 길을 가야 헬스케어 강국이 될 수 있다”며 “의료계에서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하지만 의료산업의 부가가치는 다른 산업에 비해 낮은 편이다. 정해진 의료수가에 맞추다 보니 고급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다. 공공의료 개념에 꽉 묶인 병원들은 외부에서 자본을 유치하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싱가포르나 중국 태국 등이 ‘의료 허브’를 내세우며 세계 유수의 병원과 의사, 환자들을 적극 유치하지만 한국의 병원들에서는 우수한 의사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다. 아시아는 ‘의료 허브’ 전쟁 중
싱가포르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2013년 100만명을 넘어섰다. 그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21만1218명)의 5배였다. 민간 병원들은 물론 싱가포르시립병원까지 금융회사와 일반인의 투자가 가능한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바꾼 덕분이다. 싱가포르는 또 세계 160개 의과대학 졸업생에게 싱가포르에서 의사면허를 딸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우수한 의사들이 싱가포르에 와서 일하라는 취지다.
중국도 지난해 베이징 상하이 톈진 장쑤성 푸젠성 광둥성 하이난성 등 7개 지역에서 외국인의 병원 투자를 전면 허용했다. 세계 유수의 병원들을 중국으로 끌어들여 ‘아시아 의료 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과 대만도 무섭게 추격 중이다. 일본은 아베 신조 내각이 들어선 뒤 ‘메디컬엑설런스재팬(MEJ)’을 출범시키고 무비자 입국 허용, 체류기간 연장 등을 통해 외국인 환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대만은 언어적·문화적 장벽이 없는 중국 본토 환자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은 문 닫는 병원 늘어
한국은 뛰어난 의사가 많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외국인 환자가 오고 있다. 한국 병원에서 성형이나 외과수술을 받으려는 외국인이 많다.
하지만 증가 추세는 둔화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25만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8.4%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37%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한풀 꺾였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성형외과 원장은 “공항이나 쇼핑센터에서도 외국어로 된 의료 광고를 할 수 없다”며 “내년부터는 각종 블로그에 성형수술 체험 후기나 수술 전후 사진을 올리는 것도 금지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홍보를 아예 하지 말라는 건데, 그래놓고 해외 환자 유치를 늘리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내수 시장에만 의존하는 병원이나 약국 등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3년 폐업한 일반병원·한의원·약국 등은 5256개로 2009년 4662개에 비해 13% 늘었다. 병원컨설팅업체 골든와이즈닥터스의 박기성 대표는 “최근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 병원들이 중동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파산하는 의사가 급증하는 등 상당히 좋지 않다”며 “병원들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의료산업의 현실을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험실 못 벗어나는 ‘헬스+IT’
정보기술(IT)과 접목된 헬스케어 산업도 10년째 답보 상태다. 원격진료는 IT 강국인 한국이 유리한 분야인데도 관련 의료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의료단체 등에서 “대형병원과 거대 기업들만 살찌운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SK텔레콤 등 국내 IT기업들이 모바일헬스케어 기술 개발에 나섰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제대로 된 사업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LG전자도 수년 전 휴대폰으로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당뇨폰을 내놨으나 판매 대리점마다 의료기기 판매업자로 등록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정기택 보건산업진흥원장은 “대한민국의 0.1% 인재라는 의사들이 좀 더 다양한 길을 가야 헬스케어 강국이 될 수 있다”며 “의료계에서도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