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임대료 3배 올리겠다"
30년 코리아타운 상징이던 우리아메리카銀 이전 결정
中투자 늘며 부동산 값 급등
맨해튼 공실률 금융위기후 최저…1층 매물은 아예 자취 감춰
"이 참에 건물 사는 게…"
대출 끼고 건물 매입한 뒤 임대료로 원리금 갚는게 유리
○“임대료 도저히 못 맞춰”
지난 30년간 뉴욕 맨해튼 32번가 브로드웨이에서 한인들의 거점 역할을 하던 우리아메리카은행(우리은행 미국법인)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코리아타운 밖으로 사무실을 옮기기로 했다. 우리아메리카은행 관계자는 1일(현지시간) “건물주가 올해 9월 계약 만료 후 임대료를 현재의 제곱피트당 125달러에서 400달러로 3배 이상 올리겠다고 지난달 통보했다”며 “제시한 금액을 도저히 맞출 수 없어 사무실을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제곱피트당 400달러를 ㎡당 임대료로 환산하면 4350달러(약 478만원)에 달한다. 이 빌딩 1층에 5600제곱피트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은행은 월 임차료로 70만달러를 내고 있다. 이를 224만달러로 올리겠다는 것은 사실상 나가달라는 요구와 다름없다는 게 은행 측 판단이다.
이 건물은 1984년 당시 상업은행이 미국에 진출하면서 처음으로 입점한 곳이다. 이후 한 차례 계약을 연장하면서 지금까지 30년간 한자리를 지켜왔다. 그 사이 은행 이름도 한빛아메리카를 거쳐 지금의 우리아메리카로 변경됐다. 맨해튼의 한인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사용하던 건물이어서 코리아타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은행 관계자는 “오랜 전통이 있는 곳이라 가능한 한 임차계약을 연장하려고 했지만 건물주가 제시한 금액이 워낙 커 어쩔 수 없었다”며 “다행히 코리아타운과 가까운 5번가 건물에 임차공간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임차료가 상대적으로 낮은 건물을 찾았고 공간도 3200제곱피트로 절반 가까이 줄여 들어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맨해튼 공실률 금융위기 이후 최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맨해튼 사무실의 공실률은 9.7%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실률이 줄면서 임대료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부동산전문업체 캐시디털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맨해튼의 제곱피트당 평균 임대료는 69달러로 한 달 새 1.4% 올랐다. 사무실 수요가 몰리는 미드타운의 A등급 빌딩의 임대료는 평균 75달러로 같은 기간 5% 폭등했다. 미드타운의 공실률은 6.7%에 불과하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는 “은행과 명품 브랜드 매장이 들어서는 1층의 임대료는 건물 상층부의 일반 사무실보다 10배 이상 비싸지만 매물 자체가 나오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투자공사(KIC)도 최근 인력이 늘면서 넓은 사무실을 찾았으나 임차료 부담으로 그동안 입주해 있던 맨해튼 중심부 파크애비뉴 빌딩에서 한참 벗어난 8번가에 자리를 잡았다. KIC 관계자는 “전망이 옆 빌딩에 가로막혀 있고, 위치도 월가나 미드타운의 금융가와 떨어져 있지만 예산 제약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KIC에 사무실을 임대했던 무역협회 측은 KIC가 나간 뒤 곧바로 15% 비싼 임대료를 받고 새 임대인을 구했다.
○“아예 건물을 사는 게 나을 수도”
같은 건물에 연간 250만달러의 임차료를 내고 입주해 있는 뉴욕총영사관 내부에선 맨해튼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아예 자체 건물을 사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건물 매입을 위한 대출을 받더라도 임대료를 원리금 상환에 사용하면 남는 장사라는 설명이다.
영사관 관계자는 “1997년 838만달러를 주고 대지를 매입한 유엔대표부 건물의 시가가 1억달러를 넘는다”며 “자체 건물을 보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임차료를 아끼고, 국가적인 자산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맨해튼의 대표적 고가 주택가인 어퍼 이스트(upper east)에 자리한 유엔대표부 대사관저의 시가도 매입가 1080만달러의 약 4배인 4000만달러가 넘는다. 인근 총영사관저의 시가도 5000만달러에 달한다.
일부에서는 한국계 은행과 보험사 등이 임대료 때문에 맨해튼 코리아타운에서조차 밀려날 것이 아니라 대체투자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부동산 매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기금을 제외한 일반 금융회사들은 장기투자 성격이 강한 해외부동산 투자를 금기시하고 있다”며 “왜 중국 회사들은 가능하고, 한국 금융회사는 안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