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이후 경제구조 복잡해져…시장의 문제 진단·대책이 효율적
규제는 기술발전 속도 못따라가…'원칙허용-예외금지'방식 택해야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7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한국제도경제학회 추계 학술대회 주제발표를 통해 “정치함수에 휘둘리고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후진적인 경제제도가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현재 고도의 개방체제인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는 ‘국가주의 시장경제체제’”라며 “과거에는 정부가 이 같은 체제로 급성장을 주도했으나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네 번째로 정부 규제 수준이 높은 나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정부가 개발연대 성공에 취해 관(官) 중심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제도경쟁력’이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과거 경제규모가 작았을 때는 정부 주도 경제 운용이 실패할 확률이 낮고, 산업기반 구축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박기주 성신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1970년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셋업비용(기반 구축비용)’이 필요해 정부 지원이 불가피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같은 성장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세계경제포럼(WEF)은 세계 144개 주요국 가운데 한국의 제도경쟁력을 올해 82위로 평가했다. 정부의 규제 부담과 규제 개선 효율성은 각각 96위와 113위에 그쳤다. 공무원의 의사결정 편파성 부문도 82위를 기록했다. 정책 결정의 투명성 부문은 144개국 중 133위에 머물렀다.
황 연구위원은 “정부 중심이 아닌 시장 중심 경제체제를 세우는 것이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대 이후 세계화가 진행되고 경제구조가 복잡해진 만큼 정부보다는 시장의 문제 진단과 대책이 더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 방안 등 정부 주도 성장정책은 민간 자율의 창의적 시도와 융·복합 노력을 무산시키는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또 수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공식이 한계에 봉착하자 정부가 효과 없는 대증요법적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 예로 정부가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기업의 해외 생산기지를 유턴하라고 종용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를 막을 게 아니라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해야 하지만 경직된 노동시장 등 제도가 받쳐주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대책은 정부가 여전히 특정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과거 경제개발기와 달리 관료가 시장보다 정확하게 대응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제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부처별로 규제 권한을 나누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규제가 부처별로 나눠져 있다 보니 부처 이기주의, 행정 편의주의는 물론 중복 규제가 생겨나고 있다”며 “규제를 ‘원칙금지-예외허용’에서 ‘원칙허용-예외금지’ 방식으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은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선 정부의 경제운용 방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것과 재정 확대 정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아베노믹스’(금융완화와 재정지출에 기반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사례에서 보듯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신호등의 파란불과 빨간불을 동시에 켜는 것과 같은 모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