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및 수입을 가리지 않고 한때 디젤 엔진 세단의 마케팅 캐치프레이즈로 ‘1회 주유로 서울~부산 왕복’이 등장한 때가 있었다. 한국 소비자에게 ‘서울~부산’ 왕복은 그만큼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동차 회사마다 앞다퉈 소비자를 초청,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때 자동차 회사들이 결코 드러내지 않은 사실이 있다. 바로 연료탱크 용량이다. 1회 주유량은 배제한 채 오로지 ‘1회 주유’만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론적으로 서울~부산 왕복이 불가능한 차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해당 기준을 따르면 심지어 영국 롤스로이스의 배기량 6592㏄짜리 고스트(Ghost)도 서울~부산 왕복이 가능하다. 고속도로 연료효율이 L당 8.3㎞고 연료탱크 용량이 100L니 830㎞를 달린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고효율 디젤이라면 거뜬히 서울~부산을 왕복할 수 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승용차 중 효율 1위인 푸조 208 1.4L e-HDi 5D의 고속도로 효율은 L당 24.5㎞다. 이를 적용하면 34L의 경유만 있으면 충분히 왕복할 수 있다. 이 차의 연료탱크가 50L니 왕복은 물론이요, 서울에서 다시 부산 방향으로 416㎞를 더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서울~부산 왕복은 가능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충분히 그렇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999년 월간 카테스트가 서울~부산 왕복과 관련해 재미있는 시험을 했다. 당시 치열하게 경쟁하던 현대차 EF쏘나타와 대우차 레간자, 르노삼성의 SM520으로 실제 서울과 부산을 오갔고, 기름이 떨어져 고속도로에 멈출 때까지 주행했다. 그 결과 SM520은 1139㎞, EF쏘나타는 1007㎞, 레간자는 996㎞를 달린 뒤 시동이 꺼지며 멈춰섰다. 세 차종 모두 연료탱크 용량이 65L로 동일했던 만큼 그때 발표된 결과는 한동안 논란과 화제가 됐다. 논란의 이유는 주행 평균 속도였는데, SM520은 평균 시속이 68.9㎞였던 반면 EF쏘나타는 72.8㎞, 레간자는 73.8㎞로 나타나 효율에서 뒤진 곳은 속도가 다르다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또한 소비자들은 정속으로만 4~5시간 이상 운전하는 것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며 비판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시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평균 속도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조사 반박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항변했고, 소비자에게는 요즘 말로 ‘에코 드라이빙’을 하면 누구나 달성할 수 있다는 해명도 했다. 어찌됐든 그때 이후 서울~부산 왕복은 마치 고효율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이후 현대차가 린번, 쌍용차는 액티언을 동원해 왕복 주행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서울~부산 왕복을 연상시키듯 요즘 또다시 연료효율이 논란이다.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자동차 표시연비 측정 방식과 사후 검증을 일원화하며 불거졌다. 결국 표시연비 측정은 산업부가, 검증은 국토부가 맡기로 했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누가 해도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연비와는 같지 않을 수 있어서다. 그렇게 본다면 고효율 비결은 인내심을 갖고 정속 주행하거나 여유를 가지는 게 최선이다. 최선을 다하면 연비가 L당 5㎞대로 가장 낮은 수준인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LP 720-4로도 왕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