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포트와인을 나르던 수송선 너머로 보이는 포르투 전경은 그 자체로 그림엽서다.
200년 전 포트와인을 나르던 수송선 너머로 보이는 포르투 전경은 그 자체로 그림엽서다.
처음 만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라면 처음 만난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적어도 반나절? 하루, 아니면 1주일? 포르투에서 깨달았다. 낯선 도시와 사랑에 빠지는 데는 몇 발자국 걷거나, 가만히 강가를 바라보거나, 와인 한 모금 머금을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도루 강변에서 눈부신 첫 만남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도루 강 하구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다. 포르투가 국명 포르투갈의 어원이 되었을 만큼 일찍부터 무역항으로 발달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도루 강을 따라 미지의 세계를 향해 기나긴 항해를 떠났던 곳도 이 도시다. 깃발을 펄럭이며 보물을 찾아 떠나던 대항해 시대의 영광은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그 시절의 풍취는 강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막 잠에서 깨어나는 도시의 맨얼굴을 보고 싶어 조금 일찍 아침 산책에 나서 본다. 호텔에서 나와 모퉁이 하나를 돌았을 뿐인데 도루 강이 눈앞에서 반짝인다. 물가를 따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물들이 노랑, 빨강, 연두 등 색색의 꽃처럼 피어난다.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이 도루 강을 쓰다듬고, 아침 햇살이 유리창을 간질이는 이곳은 포르투의 낭만거리 히베리아지구. 가까이에서 보면 한 집 건너 한 집은 벽면에 타일이 붙어 있다. 이 타일이 바로 포르투갈 전통 공예 아줄레주.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잔잔한 무늬와 은은한 색감이 매력적이다.

강가를 거닐다 야외 테이블 의자를 내려놓던 카페 주인과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봄디아’라고 인사를 건넨다. ‘봄디아(Bom dia)’는 포르투갈어로 ‘좋은 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직 귀에 낯선 그의 인사는 ‘너는 오늘 좋은 날을 보내게 될 거야’라는 신비로운 주문처럼 들린다.

달콤하거나 더 달콤하거나, 포트와인

돔 루이스 1세 다리 너머 빌라 노바 가이아의 풍경.
돔 루이스 1세 다리 너머 빌라 노바 가이아의 풍경.
포르투를 남북으로 가르는 도루 강 위에는 돔 루이스 1세 다리가 아치를 그리며 서 있다.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가 설계했단다. 아치의 양 끝에 교각을 세우고 뒤 아래 두 층으로 다리를 놓아, 위로는 트램이 지나가고 아래로는 자동차가 지나는 형태가 이채롭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면 빌라 노바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빌라 노바 가이아로 가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포트와인을 맛보기 위해서다. 빌라 노바 가이아는 포르투갈 최고의 포트와인 산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포트와인의 성지가 된 유래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0년 전쟁으로 프랑스가 영국에 와인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다급해진 영국 상인들이 빌라 노바 가이아로 이주해 자국으로 수출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국 상인들이 와인을 만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수출길이 막막했다. 수출 지역으로 와인을 공급하려면 배로 한 달씩 걸리다 보니 그 사이 와인이 너무 쉽게 변질됐다. 궁리 끝에 고안한 방법이 와인에 브랜디를 넣은 포트와인이다. 그렇게 달콤하면서도 알코올 농도는 짙은 포트와인이 탄생했다.

지금도 미뇨 지방에서 수확한 포도가 이곳 와이너리에서 포트와인으로 태어난다. 빌라 노바 가이아 강변부터 언덕까지 와이너리가 즐비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강가에는 당시 와인 수송에 쓰던 배들을 띄워 놓았다. 어느 와이너리를 찾아도 5~10유로면 와이너리 투어와 시음을 만끽할 수 있다. 캐릭터 있는 와이너리에 포트와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 샌드맨 지역을, 옛 귀족의 저택 같은 와이너리도 구경하고 전망 좋은 테라스에서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싶다면 테일러 지역이 적당하다. 그저 시음만 하고 싶다면 도루 강 크루즈 티켓과 패키지로 된 와이너리를 찾아도 좋다.

더 색다른 경험은 케이블카를 타고 와이너리 위를 날아오르는 것. 고아한 빨간 지붕이 빼곡한 마을 풍경에 눈마저 달콤해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돔 루이스 1세 다리 2층. 아찔한 다리 위에 서면 포르투와 빌라 노바 가이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빛바랜 도시의 반짝이는 오후

상 벤투 역에서 타일 형식의 아줄레주를 감상하는 여행자들.
상 벤투 역에서 타일 형식의 아줄레주를 감상하는 여행자들.
다리를 내려와 도시로 가는 길엔 미로 같은 골목이 이어진다. 그 길을 지나 리베르다드 광장까지 오르막을 오르면 시청과 상 벤투 역, 대성당 등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껴안고 있는 건축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타일을 이어 그림을 그려놓은 상 벤투 역의 아줄레주는 아무리 고개가 아파도 우러러보게 될 만큼 근사하다. 이대로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골목 안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본다. 내 마음을 아는지 갈매기 한 마리가 끼룩끼룩 울며 지나간다.

유난히 색이 고운 포트와인.
유난히 색이 고운 포트와인.
여행 정보

인천공항에서 포르투로 가는 직항은 없다. 마드리드, 런던 등 유럽의 다른 도시로 가는 직항을 이용한 뒤 현지 저가 항공을 타는 방법이 있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는 버스로 약 3시간30분, 기차로 2시간30분이 걸린다. 한국과 9시간 차이가 난다. 지중해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 13~38도. 화폐는 유로를 쓴다.

포르투=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