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에 배당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몇몇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은 배당할 여력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배당을 강제하면 미래 기업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신정순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21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컨퍼런스센터에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배당정책 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신 교수는 먼저 “국내 기업들의 배당 수준이 낮은 것은 산업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전체 산업구조에서 경기 흐름을 덜 타면서 배당성향이 높은 금융, 필수소비재 등의 업종 비중이 36%고 그렇지 않은 업종 비중이 28%지만 한국은 그 비중이 각각 27%와 56%로 산업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배당 여력도 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삼성전자, 현대차 등 10개 주요 기업을 뺀 나머지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은 2008년부터 작년까지 6년 연속 마이너스였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영업활동으로 번 돈 가운데 투자, 인건비 등을 제외하고 배당으로 쓸 여윳돈을 지닌 기업이 없다는 의미다.

신 교수는 “올해는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도 잉여현금흐름이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배당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것은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이 될 뿐 아니라 과도하게 경영권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무권 국민대 경상학부 교수도 “기업의 배당은 투자 결정, 자본 조달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며 “단순히 배당을 늘리려고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도 “일시적 경기 진작 효과를 위해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동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