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바둑기사 입단 시험에 실패하고, 대기업 종합상사 인턴으로 취직한 장그래의 이야기를 그린 tvN 드라마 ‘미생’(원작 윤태호, 연출 김원석)은 올 하반기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드라마다. 직장 생활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물론 인턴, 신입, 대리와 과장, 부장 등 다양한 직군 사이 오가는 처세술까지 치밀하게 파헤치면서 직장생활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는 평까지 듣고 있다.

‘미생’의 주된 줄거리는 고졸 검정고시 출신에 변변한 자격증 하나 없는 장그래(임시완)가 따가운 차별의 시선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능력이 뛰어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는 안영이(강소라), 국내 최고 명문대를 나왔으나 잡무 외에는 지시하는 것이 없는 상사와 갈등을 빚는 장백기(강하늘), 블루칼라 직군 아버지 밑에서 자라 사무직보다 현장이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한석률(변요한) 등 장그래의 동기들 이야기도 비중 있게 그려진다. 스펙이 각기 다른 네 인물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갗을 맞대고 겪는 고군분투들이 펼쳐진다.

‘미생’은 주인공들 외에 회별로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주요 인물을 설정해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6회는 우유부단하고 마음이 약해 거래처에 쓴소리를 못하는 성격의 박대리(최귀화)가 에피소드의 중심이 돼 세상 모든 ‘을’의 마음을 울렸고, 7회에서는 오상식 과장(이성민)이, 9~10회에서는 자본주의의 괴물이 돼버린 박과장(김희원)이 전체 스토리를 주도해나가며 각각 최고와 최악의 상사 모습을 보여줬다.

다양한 인물이 고루 조명되면서 직장생활에서 겪게 되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보여줘 케이블 채널로서는 초대박에 해당하는 5% 시청률을 넘어섰다. ‘미생’의 한 제작진은 “원작인 동명의 웹툰도, 드라마도 말하고 싶은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야기가 결국은 내 이야기라는 점”이라며 “장그래의 이야기가 인턴 그리고 신입 시절의 내 이야기라면 김대리, 오과장, 선차장 이야기도 시간 순으로 겪게 되는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경영 컨설턴트인 30대 이정석 씨는 “경쟁입찰과 수주산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직업인으로서, ‘미생’에서 표현되는 업무의 치열함이나 대면하게 되는 우여곡절의 디테일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고 깊이 공감이 간다”며 “월급 받는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이 정도로 잘 표현했던 작품이 있었나 싶다”고 말했다.

장그래에게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는 20대 대기업 사원 김한무 씨는 “처음에는 너무 내 이야기 같아 보기가 불편할 정도였지만, 결국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대리만족과 공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미생’의 주인공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장그래 하나가 아니라 세대별 직군별로 폭넓게 포진된 다양한 캐릭터 모두다. 젊은 친구들이 장그래에 공감한다면 연령대가 있는 시청자들은 오과장의 역할이나 위치에 관한 이야기에 공감한다. 최근에 나온 워킹맘 이야기는 여성들 입장에서도 공감할 수 있고, 김대리를 통해서는 중간관리자의 비애에도 몰입할 수 있다. 악역이라 볼 수 있는 박과장의 비리 역시도 나름대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를 이야기해 주는 등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높은 시청률로 이어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배선영 한경 텐아시아 기자 sypov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