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한 시중은행장에게 “차기 은행연합회장은 누가 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이번엔 직접 뽑지 않느냐”고 되물었더니, “다 알면서 왜 그러느냐”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가 지나자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은행연합회장에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내정 사실을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확인해줬다. 회장 선출권을 가진 은행장들은 “내정됐어?”라는 반응이었다. 신임 하 회장 내정자는 오는 24일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회장후보로 선출된 뒤 사원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된다.
은행연합회의 이런 모습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해 자율적으로 회장을 뽑은 손해보험협회나 18일 회추위 첫 회의를 열어 회장 선출 작업을 시작한 생명보험협회와 사뭇 다르다.
그동안 각 금융협회장은 관료들의 전유물이었다. 정부가 낙점한 사람이 회장으로 내정되면 회원사들은 군말 없이 회장으로 추대했다. 여기에는 관료 출신들이 회장으로 오는 것이 좋다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졌다. 정부는 관료 출신을 금융협회장으로 임명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회장 선출권도 돌려주겠다고 밝혀왔다. 이에 따라 생·손보협회는 자율적으로 회장을 선출했거나 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연합회는 회추위도 구성하지 않았다. 그저 관행대로 ‘정부가 결정해 주겠지’하며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하 회장 내정자는 한국씨티은행장을 그만두고 KB금융 회장에 도전했던 사람이다. 그가 KB금융 회장 후보로 나섰을 때 관료그룹이 밀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무난히 회장이 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러자 ‘빚’을 진 관료들이 그를 은행연합회장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왔다. 그 소문은 사실로 드러났다.
관료들 탓만 할 것도 아니다. 회장 선출권을 포기한 은행장들의 책임도 막중하다. 이런 식이라면 은행장들은 앞으로 ‘관치금융’ 운운할 자격조차 없을 것 같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