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韓·中 FTA, 中의 야심은 …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실질적 타결을 이루기 이틀 전인 지난 8일 베이징.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비회원국인 몽골 등 7개국 지도자를 따로 초청해 포럼을 열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중국의 우공이산(愚公移山) 고사를 상세히 소개했다.

집 앞 길을 막고 선 두 개의 산을 옮기려는 우공은 불가능하다며 말리는 친지와 이웃들에게 산은 높아질 수 없지만 자손 대대로 옮기면 가능하다며 산의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이에 감동한 신이 산을 옮겨줬고, 그래서 길이 뚫렸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국가 간 경제도로를 까는 지역경제공동체 건설은 길게 보고 뚝심 있게 해야 할 일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무역 상징 중국 부각

긴 시야로 국가전략을 짜온 중국의 지도자다운 메시지다. 하지만 10일 실질적 타결을 선언한 한·중 FTA는 쫓기듯이 협상이 이뤄졌다는 인상이 강했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전했다. 지난 7월 방한한 시 주석이 주문해 ‘연내 협상 타결에 노력한다’는 시한이 설정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협상에 참여한 우리 정부의 한 실무팀 관계자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내년 상반기에 타결돼도 빠른 것이라고 말했을 만큼 쟁점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왜 중국은 다급하게 이 시점에 타결 선언을 하려고 했을까.

APEC 정상회의를 전후로 전개되고 있는 중국의 행보를 좇다 보면 그 속내가 읽힌다. 지난달 중국은 베이징에서 21개국이 창립 멤버로 참여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을 이끌어냈다. 이어 지난 8일 APEC 비회원국 간 포럼에선 시 주석이 ‘현대판 실크로드’ 구축을 위한 기금을 만들고 중국이 400억달러를 출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7~8일 열린 APEC 장관급회의에선 21개 APEC 회원국 간 FTA인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를 정상회의 의제로 채택시켰다.

中 산업구조 급변 대응책 필요

이어 15일부터는 시 주석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개최지 호주를 방문한다. 이때 중국과 호주 간에 FTA가 체결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행보는 중국이 ‘자유무역의 수호자’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싶어서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중국이 자국을 견제해온 미국의 우방인 한국과의 FTA를 APEC 정상회의 개막일에 타결시킨 건 이번 행보의 클라이맥스다.

사정이 어떻든 한·중 FTA 실질적 타결로 우리로선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기회를 극대화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느냐의 과제를 안게 됐다. 협상을 앞두고 축적된 자료는 대부분 중국의 빠른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을 수 있다. 협상이 시작된 30개월 전인 2012년 5월만 해도 올 들어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누른 중국 기업 샤오미란 존재는 한국 산업계의 시야권에 없었다. 샤오미는 내년에 글로벌 500대 기업 진입을 노리지만 불과 2011년 초에 첫 스마트폰을 내놓은 신생기업이다. 그만큼 중국의 변화는 빠르다. 한국은 농업만, 중국은 제조업만 잘 방어하면 된다는 생각은 두 국가에 패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와 이에 따른 한·중 간 제조업 분화 흐름을 반영한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 중국과의 또 다른 게임이 시작됐다.

오광진 중국전문기자·경제博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