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냉면 한 그릇값이면 평양 냉면 11그릇 먹는다?
누군가에게 들은 투자 정보를 소개한다. 쓸 데가 없어 묵혀 놓은 돈이 있다면(그럴 리 없지만) 중국 접경지역으로 가서 북한 화폐를 사놓으라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화폐를 통합하면서 북한 돈 가치가 폭등할 겁니다. 독일이 통일될 때는 동독 내 민심을 생각해 동독 통화를 서독 통화의 1 대 1까지 고평가해줬거든요.”

기자를 설레게 했던 ‘대박의 꿈’은 얼마 가지 못했다. 또 다른 전문가가 화폐개혁 가능성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47년 1차 화폐개혁 이후 여러 차례 화폐 단위를 바꿨다. 가지고 있는 북한 지폐를 바꾸지 않으면 휴짓조각이 된다.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정보를 과신해선 안 된다(투자로 성공한 기자 선배가 안 보이는 이유를 알았다). 둘째, 북한 경제는 아직 불투명하다.

서울 냉면 한 그릇값이면 평양 냉면 11그릇 먹는다?
북한의 경제 상황은 베일에 가려 있다. 통계 대부분을 공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부 공개된 것도 국제표준에서 벗어나 있다. 한국은행은 매년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내놓는데 이 역시 추정치다. 농업 생산량이나 중국 무역 실적, 전력 상황 등을 퍼즐처럼 맞춰 숫자를 끌어낸다. 접경지역의 굴뚝 몇 군데에서 연기가 나오는지까지 점검한다고 한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통계를 이용한 북한 경제 이해’에 따르면 통계치는 기관마다 제각각이다. 북한의 1인당 GDP를 유엔은 638달러,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800달러(2011년)로 추정했다. 세 배 차이다.

유엔에 따르면 북한은 세계에서 17번째로 소득이 낮은 국가다. 국가 순위를 백분율로 계산하면 하위 10.9%다. CIA는 하위 16.1%, 한은은 15.9%로 추정한다. 한은 관계자는 “통계 작성 때 사용한 가격이나 환율 기준이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추정한 지난해 북한 경제성장률은 1.1%다. 2010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겪다가 이후 조금 개선된 수치다. 북한 내 식량 상황이 좋아지고 물가와 환율도 지난해 다소 안정됐다는 평가다. 배급에 머물지 않고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화’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5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북한경제 세미나에서 국책연구원의 한 전문가는 “지난해 북한이 최소한 5%는 성장했을 것”이라고 봤다. 한은이 추정한 1%대 성장률은 최근의 시장화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한은 관계자는 “북한의 가격과 부가가치율을 파악하기 어려워 연구자별로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북한의 가격 체계는 두 가지다. 국영기업 간 거래나 식량 배급 등에 적용되는 국정가격, 그리고 시장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이는 시장가격이다. 문성민 한은 북한경제연구실장은 북한의 생필품 가격을 한국의 30% 정도로 추정했다. 북한의 쌀 시장가격이 한국의 27~39%인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냉면 한 그릇은 ‘북한 원’화로 5000원(62센트), 한국 원화로는 677원이다. 서울에서 냉면 한 그릇이 평균 8000원(지방물가정보 기준)이니 우리 돈으로 북한 냉면 11그릇을 먹을 수 있다. 북한에서 소주 한 병은 북한 원으로 3133원, 한국 원으로는 426원이다. 같은 돈으로 북한에선 세 병을 마실 수 있다.

담배는 한 갑에 북한 원 1원(1센트), 즉 한국 원으로 10원에 불과하다. 단 담뱃값은 배급가격이라 시장가격과 격차가 크다고 한다. 문 실장의 결론은 북한의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단정하거나 한국 가격으로 추산하는 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담배를 사재기할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