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된 중국집·이발소…일제 강점기 예술인 집터…성북동은 박물관이다
해외 국빈들의 단골 방문 장소인 가구박물관,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성락원’, 시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이 10여년간 살다 세상을 떠난 ‘심우장’,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 과거 ‘요정정치’의 산실이던 삼청각…. 서울 성북동에 있는 대표적인 역사문화유산들이다.

한양도성의 북쪽 성곽과 북악산으로 삼면이 둘러싸인 데다 교통도 불편해 ‘도심 속 오지’로 불렸던 성북동이 최근 들어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의 또 다른 명소인 삼청동이나 인사동과 달리 성북동은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문화재와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성북동에는 국가지정문화재 26개, 국가등록문화재 1개, 서울시 지정문화재 9개, 구 문화재자료 1개 등 총 37개의 문화재가 자리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중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 등 국보(13개)와 보물(10개)은 모두 간송미술관에 있다. 문을 연 지 50년이 넘은 중국집, 제과점, 이발소, 약국, 안경집, 쌀집, 양장점 등 오래된 가게들도 성북동에 많다. 일제강점기 때 문인과 화가, 작곡가 등 많은 문화예술인이 살았던 집터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최순우 옛집, 상허 이태준 고택 등이 대표적이다. 성북동은 북악산 구간의 한양도성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락원, 심우장, 간송미술관, 삼청각, 가구박물관 등은 성북로를 중심으로 반경 2㎞ 안에 있어 걸어서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이런 역사·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관리 소홀과 획일화된 대규모 건축물 난립 등으로 성북동 특유의 경관이 훼손돼왔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성북구는 지난해 10월 성북동 일대 147만㎡를 역사문화지구로 지정했다. 건물 높이는 인접한 북악산과 한양도성 등을 고려해 구역에 따라 최대 2층(8m)까지만 지을 수 있고, 용적률은 150% 이하만 가능하다. 또 한양도성 및 주요 문화재 주변 지역에선 소매점과 음식점 등의 입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성북동이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된 이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주말엔 수천명에 달한다. 성북동의 주요 명소들을 방문하기 위해선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15분 이상 걷거나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이처럼 교통이 불편한데도 성북동을 찾는 관광객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게 성북구의 설명이다. 서울시와 성북구는 관광객들을 위해 끊어진 보도를 잇는 등 보행 환경을 연말까지 개선할 계획이다.

성북동이 서울의 걷기 좋은 명소로 떠오르면서 정작 성북동 주민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성북동엔 1970년대부터 고급 주택과 대사관저가 대거 들어서 있다. 성북구는 언덕에 있는 가구박물관과 길상사 등을 잇는 마을버스 노선을 최근 개통하려고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관광객들이 몰리면 동네가 시끄러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관 주도의 일방적인 정책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성북동 역사문화 민간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라며 “성북동 역사문화자원 보존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