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를 잘못 이해하면서 제조업을 폄하하고 있는 것 같다. 창조경제의 한 축은 기존 제조업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새로운 부가가치를 갖는 산업으로 육성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창조경제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문화 콘텐츠 육성 정도로 한정해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볼 수 있다.

얼마 전 여대생들의 미래의 남편에게 바라는 직업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제조업 건설업이 꼴찌를 차지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아마 대기업 제조업을 뺀 중소기업 제조업만 대상으로 했다면 그 선호도는 더욱 크게 추락했을 것이다.

중소기업의 위기라고 한다. 그나마 자금력과 기술력이 있는 기업은 해외로 나가고, 국내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소기업들만 남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형국이다. 글로벌 경기불황이 원인이라는 진단도 지금은 한낱 핑계로만 들린다. 모든 나라에서 중소기업이 불황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중소기업이 강한 독일과 일본을 보자. 비슷한 업종의 국내 중소기업과 비교할 때 그들의 중소기업 역시 인력과 시설 면에서 특별히 크지는 않다. 국가의 제도적 지원도 비슷하다. 이처럼 모든 외관상 조건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소기업이 허덕이는 이유는 체질이 약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통기술이든 첨단기술이든 그 기업만이 갖고 있는 고유기술의 부재가 약한 체질의 근본 원인이다.

국가 차원의 산업기술 연구개발(R&D) 체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로는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협회와 일본의 산업기술연구소가 있다. 이들은 각기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응용연구를 수행하면서, 특히 자체 R&D 능력이 미약한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들과 비슷한 성격의 이공계 출연연구소들이 전문 분야별로 설치돼 있다. 출연연구소들이 그동안 구축해온 다양한 기초기반기술은 수많은 파생 세부기술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파생 기술 중에는 당장에라도 중소기업에 접목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아 가히 중소기업 기술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하다. 이제까지 정부는 보유기술 실용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인 아까운 기술들이 방치되는 사례를 연구 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일차적인 원인으로는 보유기술 실용화에 따르는 인센티브가 그에 따르는 비용과 노력을 충분히 보상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들 수 있다. 연구원들은 이미 개발된 기술의 실용화 노력을 뒷전으로 미룬 채 새로운 과제를 따는 데만 열중하게 된다.

보유기술 실용화에 따르는 기관평가와 연구원 개개인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 실질적인 혜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 연구소 보유기술을 수요 중소기업에 접목할 수 있는 기술이전 설명회를 연구소 주도 사업으로 제도화시킬 필요가 있다. 연구소들이 단독으로 혹은 몇몇이 공동으로 보유기술 이전 추진 팀을 구성해 전국의 지방 중소기업청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면서 보유기술을 직접 소개하는 것은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출연연구소 보유기술에 대한 중소기업의 접근성을 쉽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출연연구소들이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기술이 국내 중소기업 체질 강화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은희준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명예연구원 >